새해는 대개 ‘설렘’의 감정으로 찾아온다. 달력이 새해로 바뀌는 순간,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새로운 출발은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운다.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새해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문득 묻게 된다. 그 설렘의 온도는 모두에게 같은가.
우리는 새해의 시작을 보편적 사건처럼 말하곤 하지만, 실은 문화적 의례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양력 1월 1일을 새해로 맞고, 누군가는 설날에 비로소 새해가 시작된다고 느낀다. 종교에 따라 달력이 달라지기도 하고, 절기의 리듬에 맞춰 시간을 세는 감각도 ‘주류 달력’ 밖에서 조용히 이어진다. 언제 나이를 한 살 더 먹느냐도 어떤 달력과 규칙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새해의 시작이 문화적 의례인 만큼, ‘새해’에 설렘을 담는 방식도 문화적 맥락과 여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설렘의 온도는 다문화사회에서 그 양상이 더욱 복잡해진다. 최근 공표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이주배경인구는 총인구의 5.2%에 이르렀고, 이 비율이 10%를 넘는 시군구도 17곳이나 된다. 일부 지역은 20%를 웃돈다. 이러한 수치는 우리 사회의 인구 구성이 다양해지고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새해를 맞는 설렘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에게 고르게 따뜻한 온도로 전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한다.
새해의 설렘이 더 많은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사회가 더 따뜻한 사회일 것이다. 거창한 구호가 필요한 게 아니다. 초대의 말을 조금 더 넓게 건네고, 식탁의 선택지를 조금 더 늘리고, 낯선 이에게 ‘설명’을 습관처럼 요구하지 않으며, 미디어가 전제하는 ‘당연함’을 한 번 더 되짚어 보는 작은 실천에서 설렘의 확장은 시작된다. 올해는 우리 모두, 일상의 설렘의 온도를 함께 조금 더 높여보면 어떨까.
양경은 성공회대 사회융합학부 사회복지학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