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의 폐해에 관해 책임을 묻겠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53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15일 2심 재판부의 판단을 받는다. 2020년 1심에서 패배한 건보공단이 항소를 제기한 지 5년 만이다. 공공기관이 직접 담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한 국내 첫 사례로, 재판부의 판단이 담배 규제의 향방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서울고등법원은 이날 오후 1시30분 공단이 담배 제조사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 선고기일을 진행한다.
공단은 지난 2014년 4월 흡연 폐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고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방지하겠다는 목적으로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약 533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533억원은 흡연력이 20갑년(20년 이상을 하루 한 갑씩 흡연) 이상, 흡연 기간이 30년 이상이면서 폐암 및 후두암으로 진단받은 환자 3465명에 대해 공단이 지급한 급여비 규모다. 흡연자들의 암 치료로 인해 발생한 의료비를 공단이 부담했기 때문에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이었다.
다만 1심 재판부는 2020년 11월 이 사건의 질병이 흡연 외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으며, 공단이 보험급여 비용을 지출했다고 하더라도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 손해배상을 구할 권리는 없다며 공단의 청구를 기각했다. 아울러 담배회사들이 흡연 중독성을 축소·은폐했다는 공단 측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공단은 즉각 항소해 2심 변론 과정에서 흡연과 암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서와 최신 연구를 비롯해 ‘범국민 지지 서명 운동’ 등 여론전까지 나섰다.
공단은 지난 5일 세계은행과 공동 연구한 결과, 2014년부터 2024년까지 직·간접 흡연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 규모는 40조7000억원이라고 발표했다. 2024년 한 해에만 4조6000억원의 의료비를 지출했으며 이 중 82.5%는 건보 재정에서 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단은 지난 12일에도 국립암센터 연구팀이 개발한 폐암 발생 예측모형을 활용해 담배 소송 대상자의 폐암 발생위험을 분석한 결과 폐암 위험에 대한 흡연의 기여도가 81.8%에 달했다고 강조했다. 공단은 이런 분석 결과들이 이번 항소심 선고 등에 중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해 5월 최종 변론기일에서는 호흡기내과 교수 출신인 정기석 공단 이사장이 직접 최종 변론에 나서 “담배가 폐암 등 호흡기 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은 과학적·의학적으로 명확히 입증돼 있고, 설령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고 해도 담배는 충분한 기여 인자로 질병의 발생과 악화를 촉진하기에 담배회사가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항소심에서는 △흡연과 폐암·후두암 사이의 인과관계 △담배회사의 경고·광고 행위에 위법성 여부 △공단의 원고 적격성 여부 등이 핵심 쟁점으로 판단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 판결에 따라 담배 규제 강화에 대한 논의가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공단 측은 ‘일부 승소’라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이사장은 지난 12일 보건복지부 산하기관 업무보고회에서 “최소한 일부 승소라도 해야 한다고 보고, 대법원 판단을 받기 위한 상고 이유서까지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정 이사장은 이날 항소심에도 직접 나서 판결 뒤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