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결정은 거대 양당으로부터 정치적으로 공격받아 왔다.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각자의 이해관계에 맞춰 해석하고 비난하거나 환영했다. 국민의 사법부 신뢰는 덩달아 떨어졌다. 정치권이 ‘분노의 언어’로 조성한 사법부 불신이 ‘불쏘시개’가 됐다. 지난해 1월19일 벌어진 서부지법 난동 사태는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이라는 발화점에 폭발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사태에 가담한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결과를 정치적 음해로 받아들였다. 일부는 흉기를 들고 영장전담 판사 사무실까지 난입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달 펴낸 ‘1·19 폭동 사건 백서’에서 재발 방지 대책으로 ‘조건부 구속영장 제도’ 도입을 꼽았다. ‘사법적 판단에 대한 격렬한 반발’이 발생하는 건 현행 제도가 극단적 이분법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은 발부와 기각이란 두 가지 선택지 중 결정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재판 출석을 담보하는 수단이라는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구속영장 발부가 유죄판결과 동일하게 여겨진다. 또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의 영장실질심사 결과 발표 전엔 경찰 등 관계 기관과 사전 협의 절차를 구축하고, 온라인에서 소요 사태 징후를 조기에 인지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26년 전 제시된 조건부 영장제도
법원행정처는 15일 서면 질의 답변서에서 제도 도입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구속 여부 판단에 따른 효과 차이’를 줄이고 ‘법관의 판단 편차’를 완화할 수 있을 거란 기대다. 또 해외 입법례와 현행 영장 실무와 조화, 피의자 방어권 및 피해자 보호 측면 등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관련 입법이 진행되면 국회에 필요한 자료와 의견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조건부 영장제도는 1999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2006년 위원회 논의 결과를 반영해 정부가 구속과 관련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2월 전주지법은 형사소송법 201조 1항과 4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했다. 보석처럼 기소 전 단계에서도 피의자를 석방할 수 있어야 한단 취지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제도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간 국회에는 관련 법안이 여러 번 발의됐지만 매번 기한 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 21대 국회(더불어민주당 조응천·박주민·권인숙 의원)는 물론 22대 국회에서도 법안이 계류 중이다.
검찰은 구속이 까다로워지면서 수사 속도가 늦어질 수 있고 증거 인멸 우려도 있다며 반대했다. 법무부는 21대 국회 발의안에 대해 ‘피의자 방어권 보장에 초점을 둔 제도로 피해자가 보복범죄 가능성에 더 노출되게 하는 등 피해자 보호에 역행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행정처는 보석금 납입 이외에도 다양한 비금전적 조건을 부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증금 납입이 어려운 피의자라도 다른 조건으로 석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조건부 석방’이라는 선택권이 늘면서 오히려 판사의 결정을 정치적이라고 공격하는 ‘반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단 목소리도 있다.
윤준 전 서울고법원장은 “인신구속은 항상 신중하게 해야 한다. 출석이 담보된다면 자유를 억압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며 제도 도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사법부 결정을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단 의견에는 “이 부분만 염두에 두고 인신 구속제도에 변화를 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봤다.
◆경찰 대응 방식 개선돼야
현장 대응 방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백서는 경찰과 협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경찰도 변화하는 집회 현장의 특성에 맞춘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태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A 경찰은 대응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집회나 시위는 보통 주최자가 있어 소통 창구가 마련되는데, 그때는 갑자기 군중이 모여들었다”며 “그 와중에 다수 유튜버가 선동해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난감했다”고 회상했다.
유튜버들이 시청자를 현장으로 불러들였고, 시위대가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해 법원으로 모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현장을 행사인지, 집회인지, (공수처) 경호인지를 판단하지 못해 전술 확립에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유튜버들이 사람을 모으고 선동하는 새로운 유형의 집회에 대한 대응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경찰은 사전에 신고된 인원을 기준으로 집회·시위를 관리하거나 인파가 몰리는 곳에 안전사고 위험 대응을 한다.
주요기관의 협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부지법은 백서에서 경찰과의 협업 필요성도 언급했다. 경찰과 합동으로 법원 난입이나 돌발행동 상황에 대한 모의 훈련을 하고,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 있을 때 영장실질심사 결과 발표 전 협의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두 기관이 함께 시위 정보와 동향을 수집하고 공유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당시에도 현장에 경찰관을 배치하긴 했지만 헌법기관이나 주요 시설에 대한 방어와 대비가 부족했다”며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불법행위를 엄정하게 처리하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법원과 소통해나가겠다”고 했다. 다만 “상시로 법원에 경찰 인력을 배치하진 않고 있다”며 “사태 이후 법원과 경찰이 소통 창구를 구축하거나 새롭게 전략을 세운 사실은 없다”고 했다.
◆‘분노 마케팅’ 경계, ‘편 나누기’ 피해야
사법부 공격을 ‘정치 마케팅’에 활용하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당부도 나왔다.
서부지법 사태를 분석한 책 ‘극우 청년의 심리적 탄생’을 쓴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사실과 정의보다 쟁점화를 통한 구독자와 ‘좋아요’ 증가를 노리는 정치 마케팅”이라며 “갈등을 부추기는 게 돈이 된다”고 지적했다.
김종우 연세대 연구교수(사회학)는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분노는 헌정 질서 수호의 핵심 에너지로 작동했으나, 이 과정에서 거대 양당 구도 및 대통령제 관련 권력 구조 개혁이나 제도적 견제 장치 마련 같은 실질적 논의는 뒤로 밀린 것으로 보인다”며 “분노가 정치적 양극화를 야기하는 거대 양당 체제와는 달리, 공론화위원회 등 좀 더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제도가 시민 숙의 과정을 중계하고 매개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에 대한 정책적 대응 역시 필요하단 제언이 있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도 “유튜브 생태계에서도 ‘끼리끼리’ 문화가 나타난다”며 “구독자 애칭을 부르는 등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게 일상화된, 분절화된 사회”라고 했다. 그러면서 “극우랑 술도 먹고 등산도 가고, 서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동체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미디어에 대해 진영 간 갈등을 중계하는 역할이 아니라 숙의 과정을 매개할 수 있는 의제에 관한 정보와 통로를 제공하는 적극적 역할을 주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취재=윤준호·이예림·소진영 기자
사진=남정탁·최상수 기자
편집=서혜진·도진희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기현·손성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