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증권발행(STO) 시장이 국회 문턱을 넘으며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지만 정작 시장 개설을 위한 사업자 선정 절차는 ‘공정성’ 논란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다. 금융당국의 장외거래소 사업자 선정 절차가 미뤄진 데는 핀테크 기업의 혁신 성장 기회와 시장 안정성이라는 논리가 충돌하며 파열음이 커진 탓이다. 시장 출범이 지연되는 사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5일 정치권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토큰증권 법제화 관련 자본시장법 및 전자증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금융위원회가 ‘STO·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발표하고 관련 입법 절차에 들어간 지 약 3년 만이다. 이번 개정안은 적정 요건을 갖춘 발행인에게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한 STO를 허용하고, 유통 시장을 개설해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신범준 한국핀테크산업협회 토큰증권협의회장은 “발행·유통·결제의 전 과정이 디지털화된 자본시장 모델로 빠르게 확장될 전망”이라고 환영했고, SK증권은 이날 바이셀스탠다드와 STO 및 시장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법적 기틀은 완성됐지만 정작 시장을 움직일 사업자 선정 작업에는 제동이 걸린 상태다. 금융위는 전날 정례회의에서 장외거래소 예비인가 안건을 상정하지 않았다. 직전 증권선물위원회에서 한국거래소·코스콤 컨소시엄(KDX)과 넥스트레이드·뮤직카우 컨소시엄(NXT)을 장외거래소 예비인가 심사 대상자로 사실상 선정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번 정례회의에서 최종 의결할 것으로 예상하던 때였다.
금융위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탈락 위기에 놓인 루센트블록 컨소시엄 측의 반발을 의식해 판단을 보류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루센트블록이 이번 인가전을 두고 거대 자본을 앞세운 제도권 금융사들에게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갈등의 핵심은 금융당국의 ‘발행과 유통 분리’ 원칙이다. 이에 따라 이번에 선정되는 장외거래소 사업자는 시장 개설과 중개를 전담하는 유통 역할을 독점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문제는 그동안 규제 샌드박스 특례를 통해 상품 발행과 거래소 운영(유통)을 겸해 왔던 루센트블록이 인가 경쟁에서 탈락할 경우다. 이들은 핵심 사업인 ‘거래 플랫폼’ 운영권을 잃고 단순 상품 발행사로 전락하게 돼 사실상 사업 존폐 위기에 직면한다.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는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가 기득권 중심의 시장 재편 과정에서 퇴출 위기에 몰렸다”고 호소했다. 경쟁사인 넥스트레이드가 과거 투자를 빌미로 기술 자료를 탈취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며 논란이 확산했다.
넥스트레이드 컨소시엄 측은 즉각 반발했다. 기술 도용은 사실무근이며, 컨소시엄 내에 다양한 조각투자사가 참여하고 있는 만큼 기득권의 연합이 아니라고 맞섰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뮤직카우는 “이번 논란으로 시장 개설이 지연된다면 그 피해는 다수의 혁신사업자와 조각투자 사업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시장 선점이나 혁신의 공로보다는 투자자 보호와 시장 안정성 확보 역량이 인가의 핵심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루센트블록은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소유’를 운영하며 시장을 개척해 왔지만,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한시적으로 예외를 인정받은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논란의 핵심은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가 아니라 ‘제도화 이후에도 시장 안정성을 책임질 수 있는가’에 있다”고 짚었다. 이어 “규제 샌드박스는 실험 기회를 제공하는 장치이지 영구적인 사업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아니다”라며 “제도화 이후에는 모든 사업자가 투자자 보호와 인프라 안정성이라는 동일한 잣대로 재평가받는 것이 오히려 공정한 구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