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은 사법부 역사상 유례없는 폭동을 겪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 지지자들이 법원 청사로 난입해 당직실과 집행관실을 파괴하고 외벽을 부쉈다. 유리창은 산산이 부서졌고, 법원 곳곳에는 폭력의 흔적이 남았다.
나흘 뒤인 1월23일, 김태업(사진) 당시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서부지법원장으로 긴급 임명됐다. 정기 인사를 앞당긴 이례적인 조치였다. 대법원은 “사법행정시스템을 복원하고 조직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 법원장에게 주어진 과제는 명확했다. 부서진 법원을 복구하고, 충격에 휩싸인 법원 구성원들을 위로하며, 흔들린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었다.
김 법원장은 사건 발생 1년을 앞두고 15일 서면 인터뷰에서 “생각이 다를 수 있으나 폭력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며 “법원은 혼란 속에서도 재판 기능을 유지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양자택일적 영장재판이 폭동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하고, 지난달 발간한 ‘1·19 폭동 사건 백서’를 통해 형사사법 제도 개선 과제로 조건부 구속영장 제도 도입 필요성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김 법원장은 부임 전 법원을 방문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참담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건물 외벽이 참혹하게 부서졌고, 파괴된 출입문과 창문에는 찬바람을 막으려고 임시로 플라스틱 박스나 합판을 덧대어 놓았다”고 회상했다. 백서에 따르면 시설물 피해액만 4억7857만원, 물품 피해액은 1억4363만원에 달했다. 각 과에 설치된 방범셔터는 찌그러져 여닫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기표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법원 직원 중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56명이 정신적 피해를 호소해 심리 상담을 받았다. 2명은 심층심리상담을 받았고, 3명은 병가를 냈다.
김 법원장은 “(그런데도) 각자 자리를 지키면서 재판 기능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대부분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됐다”고 전했다.
김 법원장 취임 이후 서부지법 복구는 신속히 진행됐다. 부서진 후문과 담장은 보수됐고, 출입통제시스템이 전면 개편됐다.
물리적 복구는 완료됐지만, 상처는 더 깊은 곳에 있었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선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존중하는 세상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법부를 믿고,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도 했다.
“법적 판단을 정치적 공격 해석… 사법권 존중 필요”
김 법원장은 “사법권을 존중하지 않는 풍조는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정치적 갈등 상황에서 사법부 판단을 법리적 결론이 아닌 정치적 공격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법원은 일도양단적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기관인데, 이를 진영 논리로 바라보면 사법부는 그 결과에 따라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법원의 위상도 점점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사법 시스템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더해졌다고 짚었다. “과거 일부 판결에서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나 재판 지연 문제 등이 국민적 피로를 야기했고, 결정적 순간에 법원은 믿을 수 없다는 극단 논리로 비화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난동 사태 재판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김 법원장은 “일부 변호인의 재판부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이나 원색적 모욕은 지나침을 넘어 공분을 자아내게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럼에도 “피고인들에 대한 판결은 단순한 처벌을 넘어 법치주의의 회복과 법원의 정상화를 선언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백서에 대해서도 “향후 유사 사태에 대비하고 수습하는 선례이자, 법치주의에 대한 공격에 대응한 극복의 역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백서는 형사사법 개선을 위한 구체적 제언도 담았다.
그중 하나가 ‘조건부 구속영장 제도’ 도입이다. 현행은 법원이 구속영장 발부와 기각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조건부 구속영장은 보석금 납부나 출국 금지 등 일정 요건을 붙여 영장을 발부하는 방식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건부 구속영장 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법원장은 경제력 차별 우려가 제기되는 것에 대해 “석방의 부가 조건이 금전적인 것만이 아니고, 특히 영장재판은 앞으로도 피의자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무관하게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조건부 구속영장은 이미 미국이나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라며 “피의자의 도주나 증거인멸을 방지하면서도 구속의 남용을 막을 수 있어 더욱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김 법원장은 “우리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함께 사는 세상을 추구해왔고, 이는 헌법과 법률로 뒷받침돼왔다”며 “1·19 폭동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우리 사법 시스템에 대한 중대한 침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법부는 앞으로도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국민 여러분께서도 사법부의 노력을 믿고 나아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취재=윤준호·이예림·소진영 기자
사진=남정탁·최상수 기자
편집=서혜진·도진희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기현·손성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