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마르 신성’ 윌리엄 화이트헤드 '근육질 와인'에 섬세함을 입히다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부르고뉴 포마르 피노누아 ‘거친 남성’ 캐릭터 강해/‘도멘 미쉘 르부르정’ 윌리엄 20대 초반부터 천재 와인메이커 등극/포마르에 섬세함 더해 세련된 ‘도시 남자’로 바꿔/연간 생산량 2만병 불과한 ‘희귀 와인’ 

 

도멘 미쉘 르부르정 와인메이커 윌리엄 화이트헤드. 최현태 기자

“낮과 맞서는 밤이다” 프랑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는 프랑스 부르고뉴 꼬뜨 드 본의 빌라주 포마르(Pommard) 피노누아 와인의 색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색만큼 스타일도 파워풀합니다. 이런 포마르에서 요즘 주목 받는 천재 와인메이커가 탄생합니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Domaine Michel Rebourgeon)의 와인 양조를 총괄하는 ‘포마르의 신성’ 윌리엄 화이트헤드(William Whitehead) 입니다. 그는 올해 28살에 불과하지만 이미 장인, 노장의 손맛을 보여주는 와인을 만든다는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근육질의 거친 남성’ 캐릭터로만 알려진 포마르 와인을 정밀하고 세련된 포마르로 새롭게 탄생시켰습니다.

 

부르고뉴 꼬뜨 드 본 산지. 부르고뉴와인협회
포마르와 볼네 위치. 와인스펙테이터

◆포마르 와인

 

포마르는 꼬뜨 드 뉘의 샹볼 뮈지니, 쥬브레 샹베르탱, 꼬뜨 드 본의 본 로마네 등의 명성에 다소 가려있습니다. 하지만 중세시대부터 포마르는 부르고뉴 공작이나 시토 수도회가 ‘부르고뉴 와인의 꽃’으로 부르며 부르고뉴 와인의 기준으로 삼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던 빌라주랍니다. 보통 부르고뉴 피노누아는 글라스 위에서 내려다보면 동그란 스템 연결 부위가 투명하게 보일정도로 옅은 장밋빛입니다. 하지만 포마르는 짙은 자줏빛이나 깊은 암적색을 띱니다. 와인 스타일도 진한 색처럼 강건함과 구조감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오랫동안 포마르는 힘이 넘치는 근육질의 남성적 와인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습니다. 바로 남쪽에 붙어있는 우아하고 섬세한 볼네(Volnay)의 캐릭터가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포마르가 근육질 캐릭터를 강하게 풍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토양 때문입니다. 포마르의 포도밭은 점토질이 많고 철분 성분이 풍부해 와인에 깊은 색감과 강건한 구조감, 풍성한 탄닌을 부여해 와인이 보다 진하고 힘있는 캐릭터를 지니게 됩니다.

 

포마르 프리미에크뤼 포도밭. 

향에서는 블랙베리, 다크체리, 빌베리(야생 블루베리), 구스베리, 체리 씨앗, 잘 익은 자두, 미묘한 흙내음, 향신료 노트가 느껴지며 숙성이 진행되면 동물향 같은 야성적인 노트가 나타납니다. 완전히 숙성되면 가죽, 초콜릿, 후추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입안을 꽉 채우는 질감, 단단하지만 섬세한 구조, 과실이 가득한 풍미, 그리고 매끈한 탄닌이 도드라집니다. 포마르는 자신의 진가를 온전히 드러내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브레이징 또는 로스트 사냥고기, 두툼한 소고기 스테이크, 양고기, 푹 익힌 가금류가 포마르의 탄탄한 탄닌 질감·응축된 향과 잘 어울립니다. 또 풍미가 충분히 발달한 치즈인 에푸아스(Epoisses), 랑그르(Langres), 수망트랭(Soumaintrain), 콩테(Comté)와 궁합이 좋습니다.

 

스티븐 화이트헤드와 윌리엄 화이트헤드.  인스타그램
델핀 르부르정,  윌리엄, 스티븐 화이트헤드(왼쪽부터). 홈페이지

◆도멘 미쉘 르부르정 역사

 

도멘 미쉘 르부르정의 윌리엄 화이트헤드는 근육질 일변도이던 포마르 와인을 정교한 와인메이킹을 통해 수트를 잘 차려입은 세련된 도시 남자 스타일로 바꿔놓았습니다. 한국을 찾은 윌리엄을 만났습니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 와인은 나라셀라가 수입합니다.

 

포마르에서 포도를 재배하던 와이너리 역사는 기록에 따르면 1540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의 도멘 이름이 탄생한 것은 윌리엄의 외할머니 마리 부르고뉴(Marie Bourgogne)가 에밀 클로드 르부르정(Emile Claude Rebourgeon)과 결혼하면서부터입니다. 두 아들인 앙리(Henry)와 미쉘(Michel)이 모두 와인 메이커로 포마르에서 활동했고 미쉘이 1964년 도멘을 물려받습니다. 1995년 미셸 딸 델핀 르부르정(Delphine Rebourgeon)과 와인을 유통하던 영국인 남편 스티븐 화이트헤드(Stephen Whitehead)를 거쳐 둘의 아들 윌리엄이 20대 초반부터 도멘을 맡았습니다. 그는 8살부터 방과 후마다 포도밭에 나가 가지치기, 토양 및 병충해 관리, 수확, 와인메이킹을 익혔습니다. 2024년 부친 스티븐이 타계한 뒤 윌리엄이 와이너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 전경. 홈페이지
윌리엄 화이트헤드. 최현태 기자

◆섬세함으로 재해석한 포마르

 

윌리엄은 수확 타이밍, 추출 강도 조절, 오크 사용 절제로 포마르의 스타일을 새로 정의합니다. ‘밀도는 전통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세련된 질감이 돋보이는 정밀한 포마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전체 포도송이(whole cluster)를 쓰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조부모 세대는 20~30% 정도 홀클러스터를 사용하곤 했지만, 저는 줄기를 모두 제거합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린 노트가 강해지고, 타닌 조절이 어려워져 제가 원하는 세련되고 정교한 포마르 와인을 만들기 어렵더군요. 그래서 원칙적으로 디스템을 고수하고 홀클러스터는 빈티지 조건이 아주 좋은 해에만 제한적으로 고려합니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 포도밭. 인스타그램
말 쟁기질로 포도밭 관리.  인스타그램

섬세한 포마르를 만드는 핵심은 저온·장기 침용, 자연 효모, 부드러운 추출입니다. 탱크에서 3~4주 침용하고, 10~12℃의 저온에서 장기 침용 합니다. 천연 효모만 쓰기 때문에 발효만 10일 정도로 천천히 진행됩니다. 포도즙을 위아래로 섞는 펀칭다운과 펌핑오버는 최대한 자제하고 압착은 매우 부드럽게 합니다. 과거 포마르는 강하게 포도즙을 추출하는 경향이 많았는데 윌리엄은 우아하고 섬세한 풍미를 뽑아내는데 집중합니다. 레지오날급은 약 12개월, 프리미에 크뤼는 평균 18개월을 프렌치 오크에서 숙성합니다. 포도밭도 세심하게 관리합니다.  제초제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일부 프리미에 크뤼에 지금도 말을 이용해 포도밭을 경작할 정도입니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 와인. 인스타그램

◆떼루아를 담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의 연간 생산량은 2만병에 불과합니다. 포마르에서 5개 프리미에 크뤼를 선보이며 일부 와인은 200병에 불과할 정도니 아주 희귀한 와인입니다. 2023년부터는 레이오지날급 샤르도네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또 포마르 뿐 아니라 본(Beaune), 볼네(Volnay), 생 로망(Saint-Romain), 페르낭-베르젤레스(Fernand-Vergelesses)에서도 와인을 생산합니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 뽀마르 레 뜨와 떼루아. 최현태 기자

▶도멘 미쉘 르부르정 뽀마르 뜨와 떼루아(Trois Terroirs)

 

라 보카르드(La Vache), 레 크라(Les Cras), 레 뤼리앙(Les Lulunne) 등 포마르의 북쪽과 남쪽 밭들을 섞어서 만듭니다. 석회질, 점토질 등 각기 다른 토양의 특성이 합쳐져 균형감이 뛰어납니다. 붉은 체리, 검은 딸기 향이 교차하며 아주 미세한 제비꽃 향과 말린 허브의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포마르 특유의 단단한 골격은 유지하되, 탄닌이 매우 촘촘하고 정교하게 짜여 있습니다. 피니시에서 산도가 매끄럽게 흐르며 과실의 집중도가 마지막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긴 여운을 남깁니다. 뵈프 부르기뇽(Boeuf Bourguignon),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 향이 강한 송로버섯 리조또, 에푸아스 치즈와 잘 어울립니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 포마르 레 노종. 최현태 기자

▶도멘 미쉘 르부르정 포마르 레 노종(Les Noisons)

 

레 노종은 포마르 마을 북쪽 언덕 높은 곳에 있는 밭으로, 석회질이 풍부한 토양 덕분에 일반적인 포마르보다 더 섬세하고 미네랄이 강조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1939년에 식재된 올드 바인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며, 0.3ha 남짓한 작은 밭에서 단 3~4개의 배럴만 생산될 정도로 생산량이 극히 적어 희소성이 높습니다.

 

신선한 라즈베리와 체리의 붉은 과실 향이 중심을 이루고 감초, 정향, 살짝 느껴지는 생강과 후추의 스파이시함이 복합미를 더합니다. 입안을 꽉 채우는 풍부한 과실미가 일품이고 매우 촘촘한 구조감, 파우더리한 탄닌이 특징입니다. 높은 해발고도의 밭에서 오는 생동감 넘치는 산도가 와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피니시에서는 흙 내음과 차가운 돌의 미네랄 느낌이 섞인 긴 여운이 인상적입니다. 포마르의 힘과 올드 바인의 깊이감이 만나 세련되게 완성된 와인으로, 주요 빈티지들은 평론가들로부터 90~92점대의 높은 점수를 받고 있습니다. 로스트 비프, 구운 양갈비, 풍미가 진한 오리 가슴살, 사슴고기, 꿩 요리와 매우 잘 어울립니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 본 프리미에 크뤼 레 쇼아슈. 최현태 기자

▶도멘 미쉘 르부르정 본 프리미에 크뤼 레 쇼아슈(Beaune 1er Cru Les Chouacheux)

 

본(Beaune) 지역의 남쪽 끝, 볼네(Volnay)와 인접한 곳의 프리미에 크뤼 와인으로 1957년 식재된 올드바인으로 만듭니다. 볼네와 인접한 테루아 덕분에 본 지역 특유의 풍부함과 볼네의 우아함이 공존하는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신선한 산딸기, 붉은 체리, 약간의 블루베리 향이 지배적입니다. 말린 허브, 감초, 미묘한 오크 향과 함께 시간이 지나면 가죽, 젖은 흙의 향이 피어오릅니다.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는 볼륨감이 뛰어나며 질감이 매우 크리미하고 매끄럽습니다. 탄닌이 매우 정교하고 촘촘하게 짜여 있어 탄탄한 구조감을 주지만, 결코 거칠지 않습니다. 밝고 에너지 넘치는 산도가 뒷받침돼 신선하고 깔끔한 여운이 길게 이어집니다. 로스트 치킨, 오리 요리 등 가금류, 와인 소스로 조리한 부드러운 송아지 고기, 브리와 까망베르 같은 부드러운 연성 치즈, 숙성된 콩테 치즈, 구운 버섯 요리나 트러플 향을 가미한 파스타와 잘 어울립니다.

 

도멘 미쉘 르부르정 부르고뉴 꼬뜨 도르 루즈. 최현태 기자

▶도멘 미쉘 르부르정 부르고뉴 꼬뜨 도르 루즈(Cote D’or Rouge)

 

포마르 테루아의 힘과 집중도는 엔트리급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꼬뜨 도르’ 명칭은 일반 레지오날급 부르고뉴 루즈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며, 주로 코트 드 본(Côte de Beaune) 언덕 아래쪽의 뛰어난 포도밭에서 재배된 포도로 생산됩니다. 잘 익은 레드 체리, 산딸기 등 달콤한 향이 주를 이룹니다. 여기에 장미 꽃잎의 화사함과 포마르 생산자다운 은은한 흙 내음, 오크 스파이스가 조화롭게 어우러집니다. 일반 레지오날급보다 과실의 밀도가 높고 구조가 탄탄합니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이 매우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탄닌이 촘촘하면서도 입안을 매끄럽게 감싸줍니다. 피니시 붉은 과실의 산미와 함께 약간의 미네랄리티가 느껴지며 깔끔하고 긴 여운을 남깁니다. 구운 양고기, 로스트 비프, 샤퀴테리, 버섯을 곁들인 파스타와 훌륭한 매칭을 보여줍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holar), 부르고뉴와인 마스터 프로그램,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캘리포니아와인전문가 과정 캡스톤(Capstone) 레벨1&2를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2018년부터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xelles) 심사위원,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펙사 코리아 한국소믈리에대회 심사위원도 역임했습니다. 독일 ProWein, 이탈리아 Vinitaly 등 다양한 와인 엑스포를 취재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미국,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