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남진(81)이 1972년 전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나훈아 피습 사건’과 관련된 일화를 공개했다.
나훈아 피습 사건은 당시 가요계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남진과 나훈아의 대결 구도 속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사건은 1972년 6월 4일 밤 10시 45분쯤 서울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발생했다.
당시 나훈아는 시민회관에서 ‘쇼 스타 페스티벌’ 공연 중 세 번째 앙코르곡인 ‘찻집의 고독’을 부르던 중 갑자기 무대로 난입한 20대 남성 김 모씨가 휘두른 깨진 유리병에 왼쪽 뺨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 부상으로 나훈아는 얼굴을 무려 72바늘이나 꿰매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당시 범인 김 씨의 진술과 수사 결과는 황당하면서도 복잡했다. ‘남진 배후설’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나는 남진의 팬이며, 남진의 사주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라이벌이었던 남진이 검찰 조사를 받는 등 큰 곤혹을 치렀고 양측 팬들 사이에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김 씨는 상습 협박범이자 열성적인 스토커 성향을 가진 인물로 사건 전에도 배우 신성일과 가수 남진의 집을 찾아가 돈을 요구하며 협박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남진도 SBS 예능 프로그램 ‘내겐 너무 까칠한 매니저 비서진’에 출연해 이같은 내용을 재차 확인했다.
앞선 16일 남진은 일일 매니저를 맡은 배우 이서진과 김광규가 ‘나훈아와 싸웠다는 소문도 있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예전에 나훈아가 얼굴을 다쳤을 때 ‘남진이 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떠올렸다.
남진은 “이일로 당시 특수부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며 “앉아서 한 3~5분 조사받으니까 ‘그냥 가세요’라고 하더라. 오해를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해를 받을 만큼 그 시절엔 소문이 많았다”며 “내가 다치면 나훈아 씨가 그랬다는 말이 돌고, 나훈아 씨가 다치면 내가 그랬다는 말이 돌 정도로 서로 라이벌이었다. 살았으니까 서로 다행인 일”이라고 덧붙였다.
남진은 이날 방송에서 ‘89년 남진 피습사건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남진은 1989년 11월 서울 타워호텔 주차장에서 조폭 3명에게 피습 당했다. 남진은 범인이 휘두른 칼에 왼쪽 허벅지를 관통당하는 중상을 입었다.
사건은 과거 남진이 목포에서 클럽을 운영할 때 있었던 지역 조직폭력배와의 원한 관계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남진은 이 사건으로 지금도 왼쪽 다리가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을 누비며 콘서트 중인 그는 지금도 공연하기 전이면 다리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남진은 “내가 왼쪽 다리가 좀 안 좋다”면서 “옛날에 사고로 세월이 지나고 날씨가 안 좋이니까 순환이 안 된다. (공연을) 잘 해보려고 다리를 풀어놨다”고 설명했다.
당시 남진은 “불과 1~2mm 차이로 대동맥을 비껴나가 목숨을 구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렇지 않았으면 오늘 이 프로그램도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그는 가해자를 만나 식사를 하는 등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남진은 “(가해자를) 가끔 몇 년에 한 번씩 본다”면서 “당시엔 무서운 건달이었는데 지금은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 신앙인이 됐다. 며칠 전에도 같이 밥을 먹었다”고 전했다.
이어 “(가해자를) 아는 후배 결혼식 갔다가 호텔에서 우연히 만났다”며 “그가 무릎을 꿇고 오더라.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서 봤더니 그때 찌른 친구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때 사건은 살인미수로 사회적 파장이 컸고 중형이 불가피했지만 내 나름 최선을 다해서 형을 다운시켰다”며 “최하 형량을 받을 수 있게 선처했다. 합의서부터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래서 ‘이 친구’(가해자)가 굉장히 감명 받은 것”이라고 대인배다운 면모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