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전도사’ 허승호 대표 “잊혀진 옛술 향과 맛 되살려 현대에도 전하고파” [차 한잔 나누며]

집집마다 가양주 빚던 전통문화
일제강점 이후 명맥 강제로 끊겨
마산·진해·창원 대표 술도 사라져

진주 진양하씨 가문 ‘호산춘’ 등
경남술 복원, 대중의 평가받고파

경남 창원시 북면 마금산 온천단지에서 조금 벗어난 골목 끝. ‘酒’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있는 작업 공간에 들어서자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술 내음이 가장 먼저 코끝을 자극한다. 이어 특유의 향을 가진 누룩과 발효 중인 술독들이 시야를 채운다.

지난 10일 이곳에서 만난 허승호 ‘전통주 이야기’ 대표는 ‘전통주에 인생을 걸게 된 사연’에 대해 “우리 조상들이 우리 땅에서 난 재료로 빚은 술, 그게 전통주”라는 말로 갈음했다. 우연히 접한 전통주 관련 책 한 권, 그리고 이 땅의 재료로 빚은 전통주 한 잔. 단맛과 신맛, 고소함과 은은한 향이 겹겹이 올라오는 그 술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전통주 전도사’로 통하는 허승호 ‘전통주 이야기’ 대표는 “전통을 지키되 현재와 연결된 술을 빚고 싶다”고 말한다. 허승호 대표 제공

옛 문헌을 뒤져 기록을 찾고, 사라진 전통주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허 대표가 쌓아온 시간은 지역의 끊긴 문화를 다시 잇는 작업 그 자체였다. 독학의 한계를 느낀 그는 전통주 연구소와 고창 우리술학교, 막걸리 문화촌 등을 직접 찾아가 배우며, 전통주가 갖는 문화적 가치와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전통주에는 쌀과 누룩, 물, 이 세 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게 허 대표 설명이다. 인공 감미료도, 효소제도 없다. 발효의 과정을 거치기에 오로지 ‘시간’만이 유일한 감미료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원칙을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발효는 늘 예측을 벗어나고, 계절과 온도, 누룩의 상태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전통주에는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담긴다고 말한다.

허 대표는 술 빚는 과정을 예술에 비유한다. 그는 “향이 없는 쌀과 누룩이 발효를 거치며 꽃향과 과일향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백지 위에 붓을 올리는 일과 닮아 있다”고 했다. 같은 쌀과 같은 누룩, 같은 물을 사용해도 결과는 늘 다르다. 완전히 같은 술은 다시 만들 수 없다.

이 때문에 그는 술을 귀하게 대한다. 쉽게 소비되는 알코올이 아니라, 기다림과 손길이 켜켜이 쌓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술은 직업을 넘어, 사라진 시간과 다시 이어가야 할 문화에 대한 감정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집집마다 술을 빚는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있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만 400종에 이른다. 하지만 허 대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이 문화가 강제로 끊겼다고 했다. 가양주는 불법이 됐고, 우리 술은 이름마저 빼앗겼다. 그는 “‘청주’라는 이름은 일본 술의 전유물이 됐고, 우리는 ‘약주’라는 격하된 명칭을 쓰게 됐다”고 전했다.

이 단절은 허 대표에게 과거사가 아니다. 지금도 우리가 풀어야 할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그가 발 딛고 있는 지역, 창원으로 이어진다. 마산과 진해를 품은 창원은 개항 도시였고, 주류 문화가 발달했을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당시 마산은 청주 생산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금 창원을 대표하는 전통주는 없다. 마산국화축제와 진해군항제처럼 전국적인 축제를 열면서도 내놓을 지역 술이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이것이 그가 창원에서 전통주를 고집하는 이유다.

허 대표는 창원을 넘어 경남을 대표할 전통주를 찾기 위해 2024년 ‘경남전통주보존회’를 출범시키고, 제4회 경남전통주대회를 주관했으며, 지역의 전통주 복원사업을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진주 진양 하씨 가문의 술 ‘호산춘’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즐겨 마셨다고 전해지는 ‘추로주’와 ‘과하주’ 복원에 몰두하고 있다.

허 대표는 “창원을 대표하는 전통주, 지역 축제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지역 농가의 쌀 소비를 돕는 술, 그리고 젊은 세대의 입맛에도 닿을 수 있는 술. 전통을 지키되 현재와 연결된 술을 빚는 게 저의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