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 북면 마금산 온천단지에서 조금 벗어난 골목 끝. ‘酒’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있는 작업 공간에 들어서자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술 내음이 가장 먼저 코끝을 자극한다. 이어 특유의 향을 가진 누룩과 발효 중인 술독들이 시야를 채운다.
지난 10일 이곳에서 만난 허승호 ‘전통주 이야기’ 대표는 ‘전통주에 인생을 걸게 된 사연’에 대해 “우리 조상들이 우리 땅에서 난 재료로 빚은 술, 그게 전통주”라는 말로 갈음했다. 우연히 접한 전통주 관련 책 한 권, 그리고 이 땅의 재료로 빚은 전통주 한 잔. 단맛과 신맛, 고소함과 은은한 향이 겹겹이 올라오는 그 술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옛 문헌을 뒤져 기록을 찾고, 사라진 전통주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허 대표가 쌓아온 시간은 지역의 끊긴 문화를 다시 잇는 작업 그 자체였다. 독학의 한계를 느낀 그는 전통주 연구소와 고창 우리술학교, 막걸리 문화촌 등을 직접 찾아가 배우며, 전통주가 갖는 문화적 가치와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집집마다 술을 빚는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있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만 400종에 이른다. 하지만 허 대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이 문화가 강제로 끊겼다고 했다. 가양주는 불법이 됐고, 우리 술은 이름마저 빼앗겼다. 그는 “‘청주’라는 이름은 일본 술의 전유물이 됐고, 우리는 ‘약주’라는 격하된 명칭을 쓰게 됐다”고 전했다.
이 단절은 허 대표에게 과거사가 아니다. 지금도 우리가 풀어야 할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그가 발 딛고 있는 지역, 창원으로 이어진다. 마산과 진해를 품은 창원은 개항 도시였고, 주류 문화가 발달했을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당시 마산은 청주 생산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금 창원을 대표하는 전통주는 없다. 마산국화축제와 진해군항제처럼 전국적인 축제를 열면서도 내놓을 지역 술이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이것이 그가 창원에서 전통주를 고집하는 이유다.
허 대표는 창원을 넘어 경남을 대표할 전통주를 찾기 위해 2024년 ‘경남전통주보존회’를 출범시키고, 제4회 경남전통주대회를 주관했으며, 지역의 전통주 복원사업을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진주 진양 하씨 가문의 술 ‘호산춘’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즐겨 마셨다고 전해지는 ‘추로주’와 ‘과하주’ 복원에 몰두하고 있다.
허 대표는 “창원을 대표하는 전통주, 지역 축제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지역 농가의 쌀 소비를 돕는 술, 그리고 젊은 세대의 입맛에도 닿을 수 있는 술. 전통을 지키되 현재와 연결된 술을 빚는 게 저의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