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 달린 데이터센터 선점하자”… 車 메모리 경쟁 불붙었다

메모리 3社 새 먹거리로 부상

SK하이닉스 LPDDR5X 차량용 D램
국제 기능 안전표준 최고 등급 획득

삼성, CES서 차량용 SSD로 혁신상
마이크론도 고부가가치 영역 집중

당장은 AI 수요 우선… 생산능력 변수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바퀴 달린 데이터센터’로 진화하면서 차량용 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IVI) 기능이 고도화하면서 차량이 처리해야 할 데이터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다. 글로벌 ‘메모리 빅3’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도 자체 보유 기술들을 차량용으로 이식하며 시장 선점을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SK하이닉스는 19일 자사의 최신 LPDDR5X 차량용 D램이 국제 기능 안전 표준인 ‘ISO 26262’의 최고 등급인 ‘ASIL-D’ 인증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ASIL-D 등급은 사고 발생 시 인명 피해 가능성이 높은 시스템에 적용되는 가장 엄격한 안전 기준으로 획득하기 까다로운 인증으로 꼽힌다.

SK하이닉스의 LPDDR5X는 저전력·고성능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고장 알림과 자가 진단 기능을 탑재해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와 자율주행 시스템에서 필수적인 데이터 신뢰성을 확보했다. 이는 SK하이닉스가 단순히 성능 경쟁을 넘어, 차량용 반도체의 최신 경향인 ‘안전성’ 분야에서도 세계 최상위의 경쟁력을 갖춘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역시 기술력과 사업 재편으로 차량용 메모리 시장 공략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지난 6∼9일(현지시간) 개최된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박람회 ‘CES 2026’에서 ‘탈부착 가능한 차량용 SSD’로 혁신상을 받았다. 업계 최초로 데이터 저장 용량을 최대 4TB(테라바이트)까지 지원하고, 기존 일체형 방식과 달리 교체와 업그레이드가 쉬운 모듈형 설계를 채택했다. 이는 차량 수명 주기 동안 발생하는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자율주행차 시대에 최적화된 솔루션으로 평가받는다.

차량용 메모리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마이크론은 최근 소비자용 저장장치 브랜드인 ‘크루셜’ 사업을 정리하는 결단을 내렸다. AI 데이터센터 및 차량용 메모리 등 고부가가치 영역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마이크론은 30년 이상의 전장 사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플랫폼 ‘드라이브 오린’에 LPDDR5X를 공급하는 등 시장 지배력을 유지 중이다.

메모리 3사의 이런 행보는 차량용 메모리 시장이 향후 업계의 주요 먹거리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했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츠는 차량용 메모리 시장 규모가 2024년 70억달러(약 9조3000억원)에서 2032년 209억달러(약 27조9000억원)로 3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차량용 메모리 시장이 기대대로 급성장할지는 업체별 생산능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AI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메모리 3사가 수익성이 높은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생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어서다. 시장조사업체 S&P 글로벌 모빌리티는 AI 데이터센터의 수요가 반도체 공급망을 바닥에서부터 재편하고 있으므로, 완성차 업체들은 메모리 확보를 위해 더 높은 가격과 긴 대기 시간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차량용 메모리가 급부상한 배경엔 SDV 외에도 ‘안전’이라는 요소가 자리한다. 차량 내 시스템이 복잡해지면서 반도체의 작은 오류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져서다. 이에 극한의 온도와 진동을 견디는 내구성에 더해 데이터 오류를 스스로 수정하고 시스템 고장을 예방하는 지능형 메모리 기술이 차세대 모빌리티의 필수 조건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