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3주년을 맞이한 한·미 동맹은 거대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한반도의 안보를 지탱하는 ‘군사동맹’에서 이제는 조선부터 우주·양자기술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경제적 실리를 강화하는 ‘경제·기술 신동맹’으로 외연을 크게 확장했다.
◆동맹의 새로운 ‘닻’ 내리다
19일 산업계에 따르면 한·미 산업 동맹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분야는 단연 ‘조선’이다. 중국의 해군력 증강에 맞서야 하는 미국은 자국 조선업 쇠퇴의 해법을 한국에서 찾았다.
한화오션이 필리조선소를 인수하고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MRO)사업에 본격 진출한 것은 양국 협력의 상징이 됐다. 미 해군성 장관 카를로스 델 토로는 한화의 투자가 미국 조선업 경쟁력을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한국이 미국의 국방 역량을 보완하는 확실한 ‘전력 승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선업이 바다를 지킨다면 육지에서는 ‘자원 안보’ 동맹이 구축됐다. 지난달 고려아연이 미국 테네시주에 11조원(약 74억달러) 규모의 핵심광물 제련소 건설을 확정한 것은 양국 경제 안보 협력의 하이라이트였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이를 “미국의 핵심광물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 딜”이라며, 항공우주와 국방, 반도체 등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13종의 핵심 전략 광물을 미국 내에서 직접 생산하게 된 것을 높이 평가했다. 이는 한국 기업이 미국의 안보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한 지위를 확보했음을 뜻한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기술 동맹은 지난해 10월 양국 정부가 체결한 ‘한·미 기술번영 업무협약(MOU)’을 기점으로 구체화됐다. MOU에는 인공지능(AI), 바이오, 양자, 우주기술 등 첨단 전략 기술 분야에서 상호 간의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 협력하는 내용이 담겼다.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AI다. 양국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응용기술을 망라하는 ‘AI 풀 스택’의 수출을 촉진하고, 아시아 및 제3국으로의 공동 진출을 모색하기로 했다. 또 미국의 ‘AI 표준 및 혁신센터(CAISI)’와 한국의 ‘AI안전연구소’ 간 협력으로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표준을 주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우주탐사 분야의 협력도 퀀텀 점프를 이뤘다. 양국은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협력을 재확인했다. 또 아르테미스 II 임무에 한국이 개발한 큐브위성을 탑재하기로 합의하고, 상업용 지구 저궤도 우주정거장 개발에도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해 ‘우주 동맹’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위기를 기회로’ 전략 유효
산업연구원은 최근 ‘2026년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를 통해 미·중 패권 경쟁과 보호무역주의 강화라는 대외적 위기가 역설적으로 한국 기업들에게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다질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반사이익이 뚜렷한 분야로는 바이오헬스가 꼽힌다. 미국이 ‘생물보안법’ 재추진을 통해 중국 바이오 기업을 견제하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등 안정적인 위탁개발생산(CDMO) 역량을 갖춘 한국 기업들이 중국을 대체할 최적의 대안으로 부상해서다. 산업연구원은 2026년 바이오헬스 수출이 전년 대비 7.8%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미·중 경쟁이 군사를 넘어 우주 등 전방위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의 핵심축이 ‘경제 안보’와 ‘기술’로 이동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미국 시장이 여전히 가장 크고 기술 패권을 쥐고 있는 상황”이라며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 정책에 동조하며 기회를 도모하는 것이 국익을 극대화하는 길”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아울러 “한·미 동맹을 중심축으로 하되, 유사 입장국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AI 규범이나 공급망 안정성 등 글로벌 이슈에서 한국만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새로운 차원의 자율성 제고 방안”이라고 했다. 그는 한·중 관계에 대해선 “희토류 등 높은 대중 의존도를 고려할 때 공급망의 완전한 단절은 불가능하다”며 “지자체 간 협력이나 민간 경제 채널 등 기능주의적 접근을 통해 구조적 제약하에서도 협력의 끈을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