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하나의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다. 탄생이란 보호와 안락의 껍질을 벗어나는 사건으로, 하나의 세계를 파열해야만 가능하다.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태어난다고 말하지만, 홀로 시작되는 존재는 없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세계에서 출발하여, 해체라는 질서를 따라 이곳에 도착한다.
한 생명의 출현은 다른 생명의 신체와 시간에 균열을 남긴다. 태어남은 독립의 순간인 동시에, 하나의 세계가 흩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태어나기 위해, 그리고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두 세계가 갈라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통과한 자연
◆사랑의 조건
생명을 잉태하고 아이를 낳는 일은 흔히 경이롭고 아름다운 일로 묘사되지만, 그것을 겪어내는 자에게 공포와 트라우마로 각인되기도 한다. 출산은 의도되기도, 의도되지 않기도 하며 축복되기도, 부정되기도 한다. 한 존재가 세계에 착지하는 순간, 사랑과 공포, 고통과 희열은 분리되지 않은 채 한꺼번에 밀려온다. 이은실은 이러한 좋고 나쁨의 구분, 의미와 가치 판단 이전에 놓인 순수한 경험으로서의 출산을 가시화한다. 여성에게 지어지는 짐, 사회적 시선과 압박, 고통과 책임, 모성애에 대한 담론은 그 이후의 해석으로 남겨진다.
비록 작가의 거리두기가 출산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토록 극적인 사건을 견디게 만드는 힘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산후 유선염을 소재로 한 ‘넘치는 마음과 그렇지 못한 태도’에서 암시된 바 있다. 의지와 다르게 작동하는 신체의 한계에 대한 이 작업은 몸과 마음 사이에서 극복되지 못한 간극을 드러낸다.
폭 7.2m에 달하는 ‘에피듀럴 모먼트’는 통증 완화를 위해 마취제가 투여된 이후 작가가 경험한 환각의 순간을 다룬다. 해체된 골반뼈와 신체의 파편들이 부유하고, 뱀인지 이무기인지 모를 존재가 똬리를 풀며 몸을 일으킨다. 화면 중앙을 가르는 노란 빛줄기는 천지개벽을 알리듯 낙하하며, 수평으로 퍼져나가는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마취로 인한 고통의 소거가 아니라 견딤이 발생하는 상태이다. 네 폭으로 구성된 이 대작은 신체가 감내할 수 있는 한계의 끝에서, 하나의 세계가 해체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 장면을 의식과 감각이 풀려나는 경계에 겹쳐 놓는다.
찢어지고 범람하며 휘몰아치는 풍경은 흔히 ‘모성애’라 불리는 형태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서술하기보다, 그것이 성립되기까지의 과정과 조건을 되묻는다. 전시는 관계 속에서 타자에게 몸을 내어주며 발생하는 변화와 확장을 중심에 둔다. 몸을 내어준다는 것은, 개인의 몸과 감각이 더 이상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게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때 주체는 필연적으로 취약해지고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은실의 회화가 포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불완전함을 통과하며 드러나는 힘이다. 따라서 화면에 펼쳐진 풍경은 물리적 체험의 재현이라기보다, 사랑의 세계에 진입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진동과 출렁임을 시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파고 앞에서
이은실이 전시를 통해 불러오는 것은 출산하는 주체와 태어나는 존재 사이를 잇는 탯줄의 감각이지만, 그것은 곧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높낮이와 변곡점들로 확장된다. 전시의 제목인 ‘파고(波高)’로 되돌아가 본다면, 출렁임은 중력이 존재한다는 증거이자 세계가 중심을 두고 움직이고 있음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징후다. 이은실의 회화는 이 출렁임을 하나의 개인적 체험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삶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여리고 취약한 몸을 휩쓸었던 통각은 더 이상 개인의 몸 안에 머물지 않고 밖을 향해 열리는 감각으로 전환된다. ‘파고’ 앞에서 우리는 이곳으로 향하게 한 수많은 물결을 희미하게 감각하며, 이미 한 번 건너온 생의 조건들을 다시 더듬게 된다.
신리사 미술사/학고재 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