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덴마크령 그린란드 합병 의지를 노골화하자 유럽 국가들이 반격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합병에 반대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관세’라는 무역 관련 카드를 꺼낸 만큼 일단 유럽도 무역제재 수단으로 맞설 태세다. 동맹 간 관세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 실행되면 세계 교역 시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향후 미국의 위협이 안보와 관련한 국면으로 넘어갈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붕괴 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8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미국의 그란란드 합병 위협에 대응해 유럽 국가들이 집중 논의하고 있는 대처 방안은 유럽연합(EU) 차원의 통상위협대응조치(ACI) 발동과 대규모 보복관세 부과 등이다.
ACI는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제3국에 서비스, 외국인 직접투자, 금융 시장, 공공 조달, 지식재산권 등의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다. 국제무역 시장에서 중국의 급부상 속에서 유럽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2023년 마련됐지만, 정작 유럽의 가장 가까운 동맹으로 꼽히는 미국을 대상으로 첫 발동이 논의되고 있다. ACI가 발동되면 유럽은 법이 규정하는 테두리 안에서 더 적극적으로 미국에 대한 무역과 투자 등에 제한을 가할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은 이와 별도로 930억유로(약 159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보복관세 부과 논의도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해 EU는 미국과 무역협상 당시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미국산 제품 목록을 작성했다. 미국산 항공기 및 부품, 자동차 및 부품, 농산물 등이 포함됐다. 당시 미·EU가 무역합의를 하면서 보류됐는데, 다음달 미국이 10% 관세 부과 상황에 대비해 다시 보복관세 목록을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에도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조치다. 미국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가 여전히 유럽이기 때문이다. 미국 인구조사국이 집계한 2025년 1∼10월 미국 무역규모 통계를 보면 수입과 수출을 합친 무역 총액에서 EU는 8849억달러로 1위를 차지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7312억달러), 캐나다(6067억달러)와의 무역규모를 넘어서고, 글로벌 무역시장 ‘빅2’로 꼽히는 중국(3572억달러)보다는 2배 이상 많다. 수출액으로만 한정해도 EU는 3470억달러로 미국의 가장 큰 수출 시장이다.
이 같은 무역 관련 대응 본격화는 19일부터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유럽 정상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때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조치의 측면도 존재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경제 상황에 극도로 예민한 만큼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 EU 외교관은 “(트럼프가) 이런 마피아 같은 방식을 계속 쓴다면 분명한 보복수단이 있다”며 “이는 채찍과 당근”이라고 밝혔다.
유럽의 대응은 그린란드 관련 갈등을 안보가 아닌 무역갈등 프레임 안에 가두려는 의도도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린란드 관련 갈등이 본격화된 뒤 유럽 내 싱크탱크들은 현 국면이 안보나 나토 협력 관련된 내용으로 번지지 않도록, 최대한 무역과 경제 프레임 안에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제언한 바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지난 14일 키프로스 방문 자리에서 “EU는 북극 안보 강화를 위해 미국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며 이번 갈등이 안보 프레임으로 확대되는 것을 경계했다.
일단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등 유럽 정상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잇따라 통화하며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안전보장 철회 등 군사적 수단을 언제든 쓸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트럼프 행정부 주요 인사들의 발언이 지속돼 유럽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이날 미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린란드 합병 추진이 미국의 골든돔(미국의 차세대 미사일방어망) 구축 구상과 북극 지역 안보전략의 일환”이라며 “미국이 지원을 끊는다면 우크라이나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모든 것이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이 19일 공개한 트럼프 대통령이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나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더는 순수하게 ‘평화’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끼지 않는다”며 “우리가 완전하고 전면적인 그린란드 통제권을 가지지 않는 한 세계는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나토에 대해서는 “나는 나토 창설 이래 많은 일을 해왔다. 이제 나토가 미국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