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특수고용직 등이 법원에서 민사 다툼을 할 때 노동자성을 쉽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경영계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법이라고 반발하고 나섰고, 노동계도 부족한 법이라면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노동관계법 사각지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권리 밖 노동자 보호를 위한 패키지 입법’에 속도를 내겠다고 20일 밝혔다. ‘노동자 추정제’와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일터기본법)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노동자성 입증 책임, 사업주에게
노동자 추정제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민사 분쟁 시 노동자성 입증 책임을 사업주에 지우는 것이다. 사용자가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반증(反證)하지 못하면 노동자로 우선 인정된다. 다만 이는 민사 분쟁에 한정한다. 형사 사건에서는 기존처럼 국가가 근로자성을 입증하는 구조가 유지된다.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노동부는 노동청 조사 단계에서 근로감독관 권한을 강화한다. 감독관이 사용자에게 계약서·출퇴근 기록 등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허위로 제출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재계는 노동자 추정제가 기업 경영 부담을 가중하고 사용자가 근로자성 부정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배달 라이더가 많은 플랫폼 업계는 근로자성 분쟁에서 사용자 반증 책임이 도입될 경우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건강보험 부담 커져”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면 최저임금, 주 52시간제, 퇴직금, 주휴수당, 4대 보험 등이 일괄 적용된다. 이를 피하려고 그동안 유연한 노무제공 계약으로 사업을 운영한 플랫폼 기업들은 반증 책임 제도 도입 시 압박감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 A씨는 “입증 책임이 사용자에게 넘어가면 근로자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도가 형성된다”며 “기획 소송이나 집단 분쟁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법이라는 비판도 있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일각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사례를 이야기하는데, 미국은 아무 때나 해고가 가능하고, 유연성 면에서 한국과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악용 가능성도 제기된다. 주 52시간 이상을 일하고 싶어 애초에 프리랜서 계약을 해놓고 퇴직금을 받고 싶어 노동청에 사건을 접수하는 식이 될 수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동청 접수는 형사 사건으로 분류돼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고용보험·산재보험은 일부 부담하고 있고 요율도 낮은 편이지만,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은 요율 자체가 높고 기존에 기업이 부담하지 않던 영역인 만큼 비용 증가가 커질 전망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보험료 부담이 급증할 경우 플랫폼 시장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사소송, 그 자체로 문턱”
노동계는 이 법안들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민사소송에 한정한다는 점부터 문제라는 지적이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의 하은성 노무사는 민사소송을 걸 수 있는 노동자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소송을 하면 변호사 수임료가 최소 3000만원이고, 패소 비용도 물어줘야 하는데 그걸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반문했다.
민주노총은 일터기본법이라는 별도 법을 마련하는 것에 반발했다. 이 법은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 안전하게 일할 권리 등 8개 기본법을 명시한 것이다. 개별 노동관계법에 대한 우선 적용 효력은 없다. 노동부 관계자는 “상징적인 의미가 큰 법으로 타 법과 관계는 기본법이 통과되면 개별 노동관계법을 제·개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임금·노동시간·휴가 등 구체적인 권리 보장은 결국 개별법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노총도 현장에서 실질적 권리 보장으로 연결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 측은 “현재 논의되는 방식은 근로기준법의 정의 규정에 근로자성 판단기준과 추정 제도를 명시하는 게 아니라 분쟁 해결을 전제로 한 추정 규정을 두는 수준”이라며 “이는 제한적 추정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