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제5영역] 구글과 쿠팡, 그들의 ‘태도’가 문제다

구글의 일방적 정밀지도 반출 요구 역풍 맞아
쿠팡 정보유출에도 뻣뻣한 고개에 여론 싸늘

지난해 말을 뜨겁게 달군 이슈는 ‘미국 기업’ 쿠팡이었다. 많은 얘기가 오갔지만,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청문회에 나와 90도로 고개 숙이고 사과만 해도 될 일을 ‘고개가 뻣뻣해서’ 일을 크게 키웠다는 뒷말도 적잖게 들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사실은 이 ‘태도’가 문제의 본질일지 모른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구글 지도 얘기를 해보자. 약 21년 전인 2005년 2월 발표된 구글 지도는 스마트폰과 결합하면서 세계인의 여행지도이자 내비게이션이 됐고, 나아가 택시 호출부터 식당 예약, 음식 배달까지 모든 오프라인 경제를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그러자 구글은 한국 정부에 정밀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2007년, 2011년, 2016년 그리고 2025년까지 여러 차례 요청이 있었으나 정부는 지금까지도 반복해서 거절 중이다. 남북이 대치 중인 특수한 안보 상황에서 정밀 지도를 국외로 내보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구글의 요청 초기였던 2010년대만 해도 여론은 정부에 싸늘했다. “한국을 갈라파고스처럼 고립시키는 후진적 규제”라는 비난이었다. 일본도, 대만도 다 구글 지도를 문제없이 쓰는데 왜 한국만 안 되느냐는 지적부터 이미 네이버나 카카오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구글만 막는 것은 쇄국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2020년대 중반에 이른 지금, 남북은 여전히 대치 중이고, 한국인은 여전히 네이버와 카카오 지도를 쓰지만, 여론은 180도 달라졌다. 한때 정부를 ‘후진국형 규제자’라 비난했던 여론은 이제 구글에 대해 싸늘하다.

구글은 사업 초기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를 외치며 공공선을 위해 움직이는 혁신가처럼 행세했다. 구글 서비스 대부분은 무료였고 세계 각국의 개발자와 스타트업은 구글로부터 교육 지원은 물론 큰 규모의 투자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의 구글을, 공공선을 위한 기업이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옛 제국주의자들이 그랬다. 처음에는 성경을 든 선교사들이 찾아와 봉사하면서 마음을 열게 한다. 그다음에는 총칼을 든 군인들이 찾아와 가진 걸 모두 내놓으라 협박한다. 지금 실리콘밸리의 거대 플랫폼들이 벌이는 일들도 이렇게 10여 년 사이 ‘혁신의 전도사’에서 ‘플랫폼 제국주의’로 뒤바뀌어 인식되는 셈이다.

최근 이 문제를 연구해 온 미국 보스턴칼리지의 안소연 교수와 대화할 일이 있었다.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안 교수는 아시아에서 가장 개방적인 국가 중 하나인 한국이 구글과 갈등을 빚는 이유를 ‘태도’로 설명했다. 구글이 스스로를 ‘국제 표준’이라 내세우며 한국 정부에 일방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한 반출 허가는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였다. 내 귀에는 구글이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한국 정부도, 여론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얘기로 들렸다. 미국 사회에서도 안 교수의 논문이 주요 매체에 의해 기사화됐다. 구글이 2025년 공식 요청에서는 전향적인 제안을 많이 했다는데 그 배경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미국 금융자본은 ‘선진 금융기법’과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포장지로 한국의 알짜 자산을 헐값에 사들였다. 당시 선진적이라던 그 기준들은 사실 미국인에게만 익숙하고 우리에겐 낯선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구글이나 쿠팡 같은 기업을 보면서 본능적으로 그 당시를 떠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 트라우마를 겪은 사회에 ‘태도’, 즉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그저 요식행위가 아니라 정말 중요한 본질일 수 있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