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수강했던 동양철학 강사가 던진 말에 코웃음 쳤다. ‘지구를 살리자’는 환경 운동 분위기에서도 “인간이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오만한 사고를 갖는 한 지구를 살릴 수는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물적 조건에 기반한 존재이면서도 역사 발전의 주체인 인간의 위대함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불쾌했다. 30여년 지난 지금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다”, “인간이 사라져도 환경은 남는다”라던 진지한 고민을 얼핏 이해하게 되면서 당시 반발이 청소(靑少)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우연히 만나면 사과하고 싶다.
과연 기후변화는 인간 노력으로 저지할 수 있는가. 산업혁명 이래 1950년대부터 대기 중 이산화탄소 급증과 기온 상승이 과거 나타났던 온난화 규모를 초월하고 있어 원인(인간 활동)을 바꾸면 결과(기후변화)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현재까지 국제사회의 큰 흐름이었다. 반면 기후변화 원인을 인간활동이 아닌 자연 현상으로 보고 이산화탄소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도 부인하는 음모론도 여전히 한 세(勢)를 이룬다. 지구가 따뜻해지고 있다는 온난화 사실 자체는 대체로 인정한다는 것이 양측의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서울대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의 ‘한국인의 기원’(2024)은 한민족의 형성 과정을 기후변화와 함께 짚어본 역작이다.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의 탈(脫)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동아시아에서의 인류 이동 역사를 추적했다. 기후변화엔 온난화뿐 아니라 한랭화도 있다는 것과 양자의 반복을 새삼 재인식시켜 준다. 우리가 현재 지구가 따뜻해지는 시기에 살고 있어 잠시 잊고 있는 사실이다. 기후변화는 인간이 획득할 수 있는 식량의 분포와 자원의 접근성을 바꿔 대내외적 변동을 야기한다는 점도 일깨운다. 온난화 시기 동아시아의 식량 사정은 양호하고 외부인 유입도 적어 사회의 안정적 유지가 가능했다. 거꾸로 한랭화 시기엔 기후 난민으로 부를 수 있는 북방민 남하로 한반도의 대내외적 갈등이 심화했다. 현대 한국인이 기후변화의 두 흐름 중 그나마 온난화 시기에 살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과도한 낙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