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건 자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무릎이 먼저 그만하자고 하더군요.”
21일 저녁 서울 성수동의 한 근린공원. 러닝화 차림의 사람들이 트랙을 몇 바퀴 돈 뒤 벤치 주변으로 모였다. 누군가는 종아리를 늘이고, 누군가는 스쿼트와 플랭크를 이어간다. 바로 옆 테니스장에선 라켓과 공이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린다. 예전처럼 ‘뛰고 끝’이 아닌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운동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하나만 파던 방식에서, 섞어 하는 방식으로.
◆“하나만 고집하지 마세요”
이 변화는 최근 국제 학술지 ‘BMJ 메디신’에 실린 분석 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현장에서 느끼던 감각이 숫자로 확인된 셈이다. 연구진은 수십 년간 추적된 간호사·의료 전문가 코호트 11만1000여 명의 운동 습관을 다시 들여다봤다. 단일 연구가 아닌 축적된 기록을 묶어낸 분석이다.
이들은 1986년부터 2년 주기로 설문지를 통해 걷기, 달리기, 조깅, 자전거 타기, 수영, 노젓기, 테니스, 역도 등 자신이 수행한 신체 활동 정보를 보고했다.
운동 시간은 같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달리기만 고집한 사람보다, 근력·라켓 운동을 섞은 쪽에서 사망 위험이 더 낮게 나타났다. 중요한 건 ‘얼마나 했느냐’보다 ‘어떻게 섞었느냐’였다.
현장 체감도 비슷하다.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예전엔 달리기 기록에 집착했다”며 “요즘은 주 1회 테니스, 주 1~2회 웨이트를 섞는다. 덜 지치고, 오래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무릎이 알려준 신호…“그때 멈추지 않았으면 더 망가졌을 겁니다”
변화의 계기는 대개 몸에서 온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회사원 이모(54) 씨는 10년 넘게 ‘아침 러닝’을 해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6~7km는 기본이었다.
“건강해지려고 뛰었죠. 체중도 잘 유지됐고요. 그런데 작년 봄, 무릎이 붓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참고 뛰었는데, 어느 날 계단을 내려오다 통증이 확 왔습니다.”
병원 진단은 무릎 연골 손상. 의사는 “당분간 달리기는 중단하라”고 했다. 이 씨는 그제야 멈췄다. “솔직히 겁났어요. 운동을 못 하면 몸이 망가질까 봐.”
대신 선택한 건 ‘조합’이었다. 러닝을 걷기로 바꾸고, 주 2회는 가벼운 전신 근력 운동을 했다. 주말엔 테니스로 방향 전환이 많은 움직임을 더했다. “몇 달 지나니 무릎 통증이 줄었고, 무엇보다 운동이 다시 재미있어졌어요. 예전엔 뛰는 날이 숙제 같았거든요.”
◆‘어떤 운동이 최고냐’보다 ‘어떻게 섞느냐’
의료진의 설명은 단순했다. 이 씨의 선택은 ‘특별한 방법’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에 가장 솔직하게 반응한 결과라는 것이다.
유산소 운동은 심폐 기능을 자극하고, 근력 운동은 근육과 뼈를 지탱한다. 여기에 테니스나 배드민턴처럼 방향 전환과 반응 속도가 필요한 운동은 균형감각과 민첩성을 보완한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 특정 관절과 근육에 부담이 쌓이기 쉽다. 반대로 움직임을 나누면 자극은 넓어지고, 부담은 분산된다. 몸이 오래 버틸 수 있는 구조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과유불급’이다. 운동량이 늘수록 이점이 커지다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효과가 더 커지지 않는 구간이 확인됐다. 많이 할수록 무조건 좋다는 통념과는 다른 결과다.
◆“주 3~4회, 서로 다른 움직임이 핵심”
국내 스포츠의학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기준으로 △주 3~4회 운동 △유산소 2회 △전신 근력 1~2회를 권한다. 여기에 라켓이나 구기 종목처럼 방향 전환이 많은 활동을 주 1회 정도 더하면 이상적이라는 설명이다.
한 대학병원 스포츠의학 전문의는 “같은 동작만 반복하면 부상과 번아웃 위험이 커진다”며 “운동을 섞으면 지루함이 줄고, 장기적으로 운동을 이어갈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번 분석은 관찰 연구여서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십 년간 축적된 데이터에서 일관되게 드러난 신호는 분명하다. 결국 질문은 바뀌고 있다. ‘얼마나 버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계속할 수 있느냐’로.
오늘 러닝을 했다면, 내일은 가벼운 웨이트를. 모레는 라켓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 무릎이 먼저 멈추기 전에, 몸이 오래 움직일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 그게 결국 더 멀리, 더 오래 가는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