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한국 증시가 태동한 지 꼬박 70년을 맞아 '오천피'(코스피 5,000)로 역사를 다시 썼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1월 2일 개장식에서 "병오년 붉은 말의 힘찬 질주와 같이 코스피가 5,000을 넘어 프리미엄 시장으로 비상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힌 포부가 시장 기대보다도 빨리 실현된 것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꿈의 지수'가 어느덧 현실이 되기까지 한국 증시는 굴곡의 여정을 거듭했지만, 위기 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경성방직은 1970년 경방으로 변경해 여전히 증시에서 거래 중이다.
증권시장이 본격적으로 기틀은 닦은 것은 정부가 증권시장의 발전을 위해 1962년 1월 증권거래법을 제정하면서부터다.
1961년 4억원에 불과했던 주식거래 대금은 이듬해 1천억원 수준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1962년 5월의 '증권 파동' 때 첫 위기가 찾아왔다.
시장의 급격한 팽창을 노린 투기세력으로 인해 거래소가 지급 불능에 빠진 것이다.
당시 주식회사 거래소가 부도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투자자가 속출하고 시장도 장기간 휴장에 들어가는 등 파장이 컸다.
정부가 자본시장을 되살리고자 1968년 자본시장육성 특별법과 1972년 기업공개촉진법 등을 제정하면서 1970년대엔 기업들의 '상장 러시'가 이뤄졌다.
코스피는 1983년 1월 4일 122.52로 처음 공표됐다. 이 지수는 1980년 1월 4일의 시가총액을 기준(100)으로 처음 산출된 것이다.
1989년 3월31일 최초로 1,000을 돌파하며 '네자릿수 지수' 시대를 열었다.
1980년대는 서울 아시안게임·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경제가 성장가도를 달리며 유가·금리·달러 등 이른바 '3저 효과'와 국민주 보급 등에 힘입어 주식 대중화가 진행된 시기다.
1992년 외국인 직접 투자가 전면 허용되면서 세계로 나온 국내 주식시장은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여파로 이듬해 6월16일 277.37까지 추락하고 굵직한 기업이 줄줄이 상장폐지되는 등 크게 휘청였다.
이후 구조조정과 제도 정비로 체질을 개선하고 정부기술(IT) 투자 열풍을 바탕으로 반등해 1999년 1,000선을 되찾았지만, IT 거품 붕괴와 건설경기 과열 후유증, 9·11테러로 다시 400선까지 떨어졌다.
2007년 7월 급속한 경제 회복과 펀드 투자 열풍 등에 힘입어 2,000대로 올라섰다.
그러나 '삼천피' 기대가 불어오기도 잠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다시 1,000선 밑으로 떨어졌다.
2017년 세계 반도체 경기 호황에 힘입어 2,500선을 넘어서기도 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촉발한 미중 무역갈등 등 여파로 다시 하락세가 시작됐다.
2020년 3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1,500선까지 추락했다가 개인 매수세가 유입된 '동학개미운동'과 전 세계 초저금리 정책에 따른 경기 부양 기조로 다시 급반등해 2021년 1월 '삼천피'에 도달했다.
2024년 말 비상계엄 여파 등으로 2,399.49로 마감했던 코스피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증시 부양책 기대로 분위기가 반전되며 작년 6월 3,000을 회복했고 10월27일 '4,000 시대'에 진입했다.
지난 한 해 동안 75.9% 오른 코스피는 새해 들어서도 상승 동력을 유지하며 이날 5,000선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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