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유럽 격변기 귀족 가문의 균열

가문에서 가족으로/ 로베르토 비조키/ 임동현 옮김/ 글항아리/ 2만1000원

 

가족과 성을 둘러싼 윤리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진다. 18세기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귀족 가문 브라치 캄비니는 가문의 정치적 영향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해 재산이 쪼개지는 일을 무엇보다 경계했다. 장남에게 재산을 집중시키고, 나머지 자녀에게는 최소한의 생계만 보장하는 규칙이 작동했다. 차남 이하 아들들은 신부가 되거나, 귀부인을 수행하는 남성 동반자 ‘치치스베오(cicisbeo)’로 살아갔다. 혹은 독신으로 자유연애에 몰두했다. 여성들은 주로 수도원에 들어가 여생을 보내야 했다. 가문의 논리가 모든 것을 압도했다.

그러나 문화는 언제나 균열을 잉태한다. 어느 가문에나 규범에 순응하지 않는 이단아가 등장하고, 침묵 대신 자신의 몫을 요구하며 갈등을 촉발한다. 이 책이 포착한 시기는 계몽사상이 퍼지고, 세속화가 가속화되며, 부르주아 윤리가 힘을 얻던 격변기였다. ‘이익’과 ‘애정’의 무게추가 서서히 이동하고, 윗세대가 중시하던 가치가 불과 한 세대 만에 무용지물로 전락하기도 한다.

로베르토 비조키/임동현 옮김/글항아리/2만1000원

이탈리아 피사대학 교수인 저자는 18세기 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브라치 캄비니 가문의 역사를 집요하게 추적해 재구성한다. 연구의 출발점은 가문의 창시자 레오나르도가 남긴 회고록이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역사를 복원해냈다. 한 가문의 선택과 갈등을 통해 근대 유럽 사회의 윤리적 전환을 비춘다는 점에서 미시사 연구의 미덕을 유감없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