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들른 서울 성동구의 한 마트. 정육 코너 앞에서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이 가격표를 한 번 더 들여다본다. 미국산 스테이크용 소고기 앞에서는 발걸음이 더 느려진다. “이게 이렇게 비쌌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한때 ‘가격 부담 없는 선택지’였던 수입산 소고기가 더 이상 싸지 않다. 고환율이 장바구니까지 파고들면서, 수입 소고기 가격은 체감상 이미 한우와 비슷한 선까지 올라섰다.
◆숫자가 먼저 반응했다…수입 단가 1년새 8.5%↑
22일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를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 수입 농축수산물 105개 품목의 평균 수입단가는 전년 같은 달보다 8.5% 상승했다. 통계 속 숫자는 건조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훨씬 직접적이다.
미국산 척아이롤처럼 가정에서 스테이크용으로 많이 쓰이던 부위는 100g당 가격이 4000원 안팎까지 올라왔다. 1년 전과 비교하면 30% 이상 오른 수준이다.
정육 코너 직원은 “예전엔 수입산부터 찾던 손님들이 요즘은 한우 가격을 함께 비교한다”며 “고개를 갸웃하다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관세 없어졌는데 가격은 왜 올랐나
올해부터 미국산 소고기에 붙던 관세는 전면 폐지됐다. 이론대로라면 가격이 내려가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미국 현지 사육 여건 악화로 공급이 불안정해졌고, 여기에 강달러가 겹치면서 환율 부담이 그대로 가격에 반영됐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위협하면서 수입 물가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관세가 없어졌다는 얘기를 듣고 가격을 묻는 손님은 늘었지만, 막상 가격표를 보면 대부분 그냥 돌아선다”며 “환율이 내려오지 않는 한 체감 가격이 달라지긴 어렵다”고 말했다.
◆‘가성비 공식’ 깨지자 선택도 달라졌다
가격이 오르자 소비자의 선택도 변하고 있다. 예전처럼 무조건 수입산을 고르기보다는 아예 구매를 미루거나 국내산으로 방향을 틀는 경우가 늘었다. 실제로 일부 대형마트에서는 수입산 소고기 회전율이 눈에 띄게 둔화됐다.
유통업계는 대응에 나섰다. 수입 원물 비중을 조절하고, 공급선을 나눠 리스크를 줄이는 한편 국내산 대체 상품을 전면에 배치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소포장 상품을 늘려 체감 가격을 낮추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주부 이모(46) 씨는 “예전엔 수입산을 집는 게 고민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이 가격이면 차라리’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며 “고기 선택 기준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환율은 숫자로 움직이지만, 소비자는 가격표로 먼저 느낀다. 수입 소고기가 더 이상 ‘싸서 고르는 고기’가 아니게 되면서, 정육 코너 앞에서의 망설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