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읽고 계세요?” “양귀자 ‘모순’”… ‘MZ세대 여성’ 인생책 된 1998년 소설 [S스토리-27년 거슬러…양귀자 소설 ‘모순’ 역주행]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 2위… 2020년부터 다시 입소문타며 인기
일란성 어머니·이모 ‘다른 인생’ 보며 여성의 삶 냉철하게 성찰
동시대 관통하는 현실적인 고민 담아… 2030 여성들에 큰 사랑
SNS 추천 한몫… ‘불안과 선택’ 뉴트로 문체로 그려내 신선감

“교보문고의 2025년 베스트셀러 1위는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창비), 2위는 양귀자의 장편소설 ‘모순’(쓰다)….”

 

지난해 말 교보문고에서 발표한 ‘2025년 베스트셀러 순위’ 자료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2년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야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1998년에 발간된 양귀자의 장편소설 ‘모순’이 27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종합 2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쉽게 믿기 힘든 역주행이었다. 교보문고의 설명에 따르면, 양귀자의 ‘모순’은 지난해 단 한 차례도 주간 베스트셀러 10위권을 벗어나지 않고 견조하게 순위를 유지한 끝에 종합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더구나 1998년 출간 당시에도 종합 2위를 기록했는데, 27년 만에 출간 당시 순위로 회귀한 건 한국 출판계에선 전례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1998년 출간된 양귀자 작가의 장편소설 ‘모순’이 27년의 시간을 거슬러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양 작가는 2000년대 이후 인터뷰를 일절 고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7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 어떻게 세월의 마모를 딛고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한국 사회에서 정신의 양식이 될 수 있었을까. 믿을 수 없는 ‘모순’의 역주행에는 우리가 미처 제대로 깨닫지 못한 어떤 시대정신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모순’ 역주행의 미싱링크 추적이 절박하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어느 날 아침 문득, 정말이지 맹세코 아무런 계시나 암시도 없었는데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9쪽)



먼저 ‘모순’의 판매 추이를 더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교보문고에 확인한 결과, 양귀자의 ‘모순’은 살림출판사에서 발표된 1998년 무려 40만부가 팔리며 종합 베스트셀러 2위를 차지했고, 이듬해에 9위를 기록한 뒤 순위에서 사라졌다. 한동안 절판됐던 책은 2013년 쓰다출판사로 옮겨 개정 출간됐고,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이 강타한 2020년부터 조용히 입소문이 나면서 독자들이 다시 찾기 시작했다. 2021년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66위로 재등장한 뒤, 2022년 81위, 2023년 24위, 2024년 6위로 꾸준히 상승한 끝에 지난해 2위까지 오르며 정상 턱밑까지 육박했다.

 

책은 얼마나 팔렸을까. ‘모순’ 개정판을 출간한 쓰다출판사에 확인한 결과, 2025년 말 기준으로 무려 260쇄를 찍었고, 개정판만 8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작품을 처음 출간한 살림출판사에서도 1998년 40만부가 팔렸고 이듬해에도 적지 않게 판매됐으니, 모두 합치면 130만부 이상 팔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누가 ‘모순’을 주로 찾아 읽은 것일까. 교보문고에 의뢰해 지난해 도서 구매층을 확인한 결과, 전체 구매자 가운데 여성이 75.4%로 남성(24.6%)보다 3배가 많았다. 세대별로는 20대가 39.2%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27.8%, 40대가 15.7%, 50대가 10.6%, 10대가 3.8%, 60대 이상이 3.0% 순이었다. 따라서 20∼30대(67.0%) 여성 독자들이 ‘모순’을 애독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어서 작품의 개요를 살폈다. ‘모순’은 연작 소설집 ‘원미동 사람들’(1986)과 장편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2) 등으로 1990년대를 빛낸 작가 양귀자가 1998년 출간한 장편소설이다. 작품은 결혼을 앞둔 25세의 미혼 여성 안진진이 모순적 현실을 목도하거나 직접 경험하면서 한 걸음씩 성장해 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억척스러운 장사꾼 엄마와 굴곡 심한 삶을 거쳐 행방불명 상태인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진진은 엄마와 일란성 쌍둥이인 이모가 엘리트 남자와 결혼해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며 어머니와 전혀 다른 인생행로를 걷는 모습과, 대비되는 두 남성 김장우와 나영규 사이에서 줄타기 같은 사랑을 하면서 자신의 모순적 삶을 성찰해 나간다.

“내가 결혼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제발, 부탁이니, 누구도 비난하지 말기를 바란다. 여자 나이 스물다섯에 할 수 있는 결단이 꼭 결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나처럼 결혼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217쪽)

 

유튜버 찰스엔터가 유튜브 채널 ‘민음사 TV’에 출연해 양귀자 작가의 소설 ‘모순’을 인생책으로 소개하는 모습. 민음사 TV 유튜브 화면 캡처

도대체 ‘모순’은 어떻게 27년의 세월을 거슬러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포털 네이버에서 ‘양귀자의 장편소설 ‘모순’은 왜 역주행하고 있는가’라고 묻자, 네이버 인공지능(AI)은 “양귀자 ‘모순’의 역주행은 2030세대의 공감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확산, 뉴트로(신복고) 문체, 자기발견적 읽기 등 복합 요인이 맞물린 결과”라며 구체적인 답을 제시했다.

“20∼30대 여성 독자의 전폭적 지지와 구매 비중이 높았고, 유튜브·SNS 추천이 상승세를 이끌었습니다. 페미니즘 열풍과 함께 어머니와 이모의 대비되는 삶을 통해 여성의 현실을 냉철하게 파헤친 점이 호응을 얻었습니다. 사랑·안정·행복 등 보편적 고민을 솔직하게 드러내 ‘MZ세대’(1980∼2000년대생)의 자존감 담론과 맞닿아 재조명됐습니다. 1990년대식 진솔한 문장과 느린 리듬이 SNS 피드 피로감을 덜어주며 ‘뉴트로’ 감성으로 신선함을 줍니다. 일란성 쌍둥이 모녀의 극명한 대비와 두 남자의 선택 축이 현대인의 불안과 선택을 투영해 공감을 넓힙니다.…”

2030세대의 공감, 페미니즘과 여성의 현실 조명, 뉴트로 문체 등의 분석은 나름 그럴듯해 보였지만, 좀 더 객관적 근거와 깊이가 필요해 보였다. 객관적 레퍼런스를 위해 학위 논문이나 학술 논문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회도서관의 논문검색 코너에서 ‘양귀자의 ‘모순’을 키워드로 입력해 검색한 결과, 석·박사학위 논문(8편) 및 잡지 등에 발표된 학술논문(12편) 20편이 떴다. 작품이 발표된 1998년부터 2∼3년 집중적으로 발표된 뒤 줄어들었다가, ‘모순’이 역주행을 시작한 2020년 이후 다시 논문 발표도 줄을 이어서 모두 8편이 발표됐다.

 

사진=SNS 캡처

2020년 이후 연구자들은 구체적으로 ‘모순’의 어떤 측면을 주목했을까. ‘인물의 심리와 교육 방안’(안세은의 석사학위 논문, ‘양귀자의 ‘모순’에 나타난 인물의 심리와 교육방안 연구’) 등 보편적 접근도 있었지만, ‘남성 주체의 재현 양상’(부용, ‘양귀자 장편소설의 남성 주체 재현 양상’)이나 ‘모녀 관계와 여성 주체 연구’(김영은, ‘양귀자 장편소설에 나타나는 모녀 관계와 여성 주체 연구’), ‘돌봄 관계와 돌봄 인식’(정미진, ‘양귀자 소설에 나타난 돌봄관계와 돌봄인식’) 등 페미니즘 리부트와 돌봄 문제 등 새로운 시대 인식을 반영한 분석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인식이 두드러진 김영은의 논문 ‘양귀자 장편소설에 나타나는 모녀 관계와 여성 주체 연구: ‘모순’을 중심으로’(‘한국예술연구’, 제39호, 2023년 3월)를 출력해 읽어 나갔다. 김영은은 논문에서 “발화 주체인 안진진이 어머니-이모를 바라보는 시선과 함께 두 어머니와 딸이라는 관계성에 주목”하면서 “안진진이 발화 주체인 것에서 새로운 유형-물신화를 내면화한 속물형 여성 주체가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딸인 안진진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발화에서 1990년대 신자유주의 사회의 생존 전략이 담보되어 있다”며 “멜로 드라마적 연애 서사에서 삶에 대한 진중한 고뇌를 덧붙이는 이야기로 확장”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296쪽)

유통 현장이나 문학평론가 등 전문가들의 생생한 의견을 더 듣고 싶었다. 교보문고의 김현정 베스트셀러 담당은 이와 관련, “‘모순’의 역주행은 한국소설의 인기를 증명하는 것 같다”며 “특히 20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는데, 이는 동시대성을 가진 작품 소재로 청춘들의 고민과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며 세대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힘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문학평론가인 박혜진 잡지 ‘릿터’ 편집장은 “20∼30대 여성 독자들은 양귀자로부터 한국의 제인 오스틴을 보는 것 같다”며 ‘한국의 제인 오스틴’론을 펼쳐 흥미진진했다. 즉, “제인 오스틴은 작품을 통해 결혼이나 사랑, 내면 심리와 관계 등에서 적지 않은 통찰을 주는데, 양귀자와 그의 작품이 그런 역할을 한 것 같다”며 “실제로 결혼 제도에 대한 회의도 많은데, 기존 작품에서 충족이 안 되는 것을 충족해주는 측면이 있다”고 부연했다.

 

양귀자 작가 자신은 ‘모순’의 역주행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어 개정판을 출간한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 쓰다출판사 관계자는 통화에서 “양 작가는 2000년대 이후 인터뷰를 일절 고사하고 있다”며 “작가와의 인터뷰는 어렵다”고 말했다. ‘‘모순’의 역주행에 대한 작가의 반응이나 의견을 알고 싶다’고 거듭 묻자, 출판사 측은 “양 작가가 젊은 사람들이 읽는 게 ‘신기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만 대답했다.

도대체 ‘모순’은 왜 지금 다시 역주행하게 된 것일까. ‘모순’ 역주행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각종 통계와 자료, 여러 분석과 의견 등을 만날 수 있었지만, 100% 만족할 수는 없었다. 대답은 ‘모순’ 작품 자체에 있는 것일까. 교보문고에 책을 주문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작품 속으로, 문장 속으로. 다시 진진의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2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