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령 그린란드의 ‘운명’을 놓고 미국과 유럽 간의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영국에선 올봄으로 예상되는 국왕 찰스 3세의 미국 국빈 방문을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럽 왕실들 전체가 오랫동안 혼인 등으로 얽히고설킨 관계이다 보니 찰스 3세와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10세도 먼 친척에 해당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단 그린란드 관련 발언 수위를 낮추며 긴장을 완화하는 길을 택했다.
22일(현지시간) 영국 신문 ‘데일리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찰스 3세는 오는 4월 부인 커밀라 왕비와 함께 미국을 국빈으로 방문할 계획이다. 올해는 영국 식민지로 출발한 미국이 1776년 영국 국왕의 지배를 거부하고 독립을 선언한 지 250주년이 되는 해다. 트럼프 행정부는 찰스 3세가 독립 250주년 축하 메시지를 미국 현지에서 공개한다면 역사적 광경이 될 것이란 기대를 품고 있다.
찰스 3세는 지난 2025년 9월 트럼프와 부인 멜라니아 여사를 국빈으로 초청해 런던 근교 윈저성(城)에서 국빈 만찬을 베푸는 등 극진하게 대접한 바 있다. 이에 트럼프는 “내 인생 최고의 영예”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차지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며 영국 정가와 언론계에선 ‘이 시점에 찰스 3세의 방미는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제1야당인 보수당 사이언 호어 의원은 트럼프를 “폭력배 해적”이라고 부르며 찰스 3세의 국빈 방미 취소를 요구했다. 그는 “문명 세계는 더 이상 트럼프를 상대할 수 없다”고도 했다. 또다른 야당인 민주자유당 에드 데이비 의원도 “영국이 트럼프의 나쁜 행동에 보상을 제공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당 내각을 이끄는 키어 스타머 총리를 향해 “그린란드를 계속 괴롭힌다면 (영국 국왕은) 미국 국빈 방문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알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부 언론은 찰스 3세의 방미를 겨냥해 “영국 국왕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환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지적까지 쏟아내고 있다. 데일리익스프레스는 자사 홈페이지에 ‘영국 정부가 찰스 3세 국왕의 미국 방문을 취소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설문조사 코너까지 만들고 독자들의 의견 수렴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차원의 군사 훈련’이란 명분을 내걸고 그린란드에 군대를 보낸 영국 등 유럽 8개국을 타깃으로 한 보복 관세 부과 방침을 일단 철회했다. 그린란드의 ‘소유권’을 원한다던 종전의 입장도 바꿔 그린란드에 대한 ‘전면적 접근권’(total access) 요구로 수위를 낮췄다. 이에 덴마크 및 그 자치령인 그린란드는 “미국과 모든 안건을 놓고 협상할 수 있으나, 영토 주권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응수했다.
스타머 총리는 아직까지 찰스 3세의 국빈 방미 취소 여부에 관해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자칫 미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가능성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스타머 총리는 이날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도 그린란드 문제와 관련한 ‘외교적 해법’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영국이 나토 주요 회원국으로서 그린란드를 비롯한 북극 지역 안보를 위해 전면적 역할을 맡을 준비가 돼 있음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