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섭씨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신영복 전집 1권-감옥으로부터의 사색』, 473쪽)
필기도구를 지참하는 것이 금지된 감옥.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집필실에 들어가서 교도관이 지켜보는 앞에서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집필실에 들어가기 전에 머릿속으로 수없이 생각을 정리하고 교정까지 다 본 뒤 집필실에 들어서야 했다. 무더웠던 1985년 8월, 그는 형수에게 위와 같은 편지를 보냈다.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임용돼 강의를 하고 있던 고 신영복(1941~2016) 전 성공회대 교수는 1968년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에서 복역하게 됐다. 이때 그는 “이 징역 세월을 가장 정직하게 살아 보자” “사회의 밑바닥에서 가장 춥게 살아온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정직하게 부딪치고 이 사람들 속에서 서자”(『신영복 전집 7권-손잡고 더불어』, 20쪽)라고 다짐한 뒤 감옥생활에 임했다.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쳇바퀴 같은 일정과 시간, 가난하고 춥게 살아온 사람들 속에 자신의 몸을 온전히 맡기자, 거대 담론이나 이론 등에 대한 생각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생활과 삶의 뿌리에서 자라난 생각들이 밀려오는데. 바깥세상에선 관심 밖이었던 것들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급기야 시간의 묘약을 거치며 사색으로 승화하게 되는데....
“눈이 내리면 눈 뒤끝의 매서운 추위는 죄다 우리가 입어야 하는데도 눈 한번 찐하게 안 오나, 젊은 친구들 기다려쌓더니 얼마 전 사흘 눈 내리는 날 기어이 운동장 구석에 눈사람 하나 세웠습니다. 옥뜰에 서 있는 눈사람. 연탄조각으로 가슴에 박은 글귀가 섬뜩합니다. ‘나는 걷고 싶다.’ 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우리들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 그 글귀는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 이마를 때립니다.”(『신영복 전집 1권-감옥으로부터의 사색』, 565쪽)
그리하여 신영복은 감옥의 삶과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태어난 사색을 담아서 아버지를 비롯해 형수와 계수, 조카 등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 더 시간이 흐른 뒤 모범수로 인정되면서 그는 더 자주 사색을 담아 편지를 쓸 수 있었다.
신영복은 남한산성 육군교도소를 시작으로 대전교도소, 전주교도소를 거치며 인생의 4분의 1이 넘는 20년 20일을 옥에서 보냈다. 죽음과 절망의 끝자락에서 그는 깊은 성찰과 사색, 기록을 통해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감옥이야말로 “진정한 대학”이었고, 감옥에서 비로소 구원받았다고 그는 나중에 고백했다.
“인생을 가장 춥게,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인생을 사는 태도를 보고, 이런 사람들에 비해서 내가 느꼈던 생각들은 매우 사치스럽고 관념적이었다는 것과 이런 것을 내가 여기서 떨어 버릴 수 있다는 것, 이러한 것들이 하나의 학교 같이 새로 배우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가장 춥고 가난한 사람들의 체온으로 제 자신을 구원받았다고 생각됩니다.”(『신영복 전집 7권-손잡고 더불어』, 20쪽)
신영복은 1988년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직후 감옥에서 가족에게 보낸 편지들과 기록을 묶어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했다. 책은 100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오랜 시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1998년 사면 복권되자 정식 교수가 돼 강의를 이어가다가 2016년 1월 작고했다.
돌베개 출판사가 신영복 선생의 1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대표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비롯해 11권짜리 『신영복 전집』과 그의 사상과 삶에 대해 교수 13명이 강의한 내용을 담은 『신영복 다시 읽기』를 펴냈다.
전집은 그의 대표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비롯해 해외여행을 다니며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은 『나무야 나무야』와 『더불어 숲』, 선생이 대학 강단에서 오랫동안 진행했던 동양고전 강의를 묶은 『강의』, 정년퇴임 후 자신의 글들에 대한 생각과 경험에 대해 강의했던 내용을 모은 『담론』, 선생이 세상을 뜬 뒤 간행된 유고집 등 모두 11권으로 구성됐다.
사단법인 더불어숲 김창남 이사장은 전집의 서문 격인 ‘신영복 전집을 발간하며’에서 “지금이야말로 선생이 그토록 강조하셨던 성찰의 의미를 함께 되새기며 확산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전집과 별도로 출간된 『신영복 다시 읽기』는 전 현직 교수 13명이 신영복 선생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는 일종의 강연록이다. 한흥구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신영복이 살아왔던 격변의 시대적 상황과 그의 일생을 함께 살펴보고,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가 ‘신영복과 통혁당 사건’을 설명한다. 민중 사학자인 권진관 성공회대 전 교수는 신영복의 이야기꾼 면모를 조명하고,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는 신영복의 옥중문학을 소개한다. 선생의 어린 시절을 알 수 있는 『신영복 전집 7권-손잡고 더불어』와 『신영복 다시 읽기』에 담긴 인상적인 에피소드 하나.
“네가 1등을 했다고 하지만 그건 네가 교장 선생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내가 1등이야!” 초등학교 3학년 말,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한 친구가 소년 신영복의 앞길을 가로막고 쏘아붙였다. 그는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친구는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그는 담임교사의 지시로 친구의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친구는 거의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 다른 형제들과 함께 며칠 굶은 채로 앉아 있었다. 그는 비로소 전기가 들어오는 교장 사택에서 공부하는 자신의 처지와 그 친구의 처지를 비교하면서 그 친구가 1등이라는 말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뒤론 가급적 1등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장난꾸러기로 지내게 됐다고.
이번 책 출간과 함께 신영복 선생의 10주기를 추모하기 위한 각종 행사도 열린다. 북 콘서트(1월 30일)와 서예전(2월 4~9일), 신간 『글을 쓰다가, 신영복』 출간(5월) 등 그의 10주기를 조명하는 다양한 행사와 책 출간이 이어질 예정이다. 책을 펼치면 빠른 속도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사색을 친절하게 전하는 신영복 선생을 만날 수 있을지도.
“...만약 새로움이 완성된 형태로 우리 앞에 던져진다면 그것은 이미 새로움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모든 새로움은 그에 임하는 우리의 심기가 새롭고, 그 속에 새로운 것을 채워나갈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주어지는 새로움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신영복 전집 1권-감옥으로부터의 사색』, 3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