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알던 글로벌 안보 지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미국은 제1 도련선(쿠릴열도-일본-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보르네오섬) 내에서 모든 위협을 격퇴하겠다며 중국을 겨냥했다. 중국도 해·공군력 증강을 거듭하며 태평양 진출을 꾀하고 있다.
지정학적 긴장 고조 속에서 한국도 핵추진잠수함 건조라는 카드를 꺼냈다. 국방부는 올해 안에 핵잠과 관련한 원칙, 건조계획, 비확산에 대한 입장 등을 담은 한국형 핵잠 기본계획을 제시할 예정이다.
기본계획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핵잠을 만드는 첫 단추 역할을 한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는 것처럼 기본계획의 방향성을 올바르게 잡아야 핵잠 건조가 성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정치·안보·경제·기술 등의 분야에 걸친 변수들을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가 장기 프로그램 설계 관점서 다뤄야
핵추진잠수함 건조 기본계획은 핵추진체계를 비롯한 기술적 문제와 군사전략·재정·외교 등의 변수까지 감안해야 하는 고차원 방정식이다.
우선 해군과 합참이 핵추진잠수함의 주요 임무와 작전 개념을 확립해야 한다.
호주는 미국·영국이 함께 참여하는 오커스(AUKUS)로 확보하는 핵추진잠수함을 남중국해·대만해협에서의 중국 견제, 미국과의 연합작전에 투입한다. 역할이 뚜렷하다.
반면 한국은 핵추진잠수함의 대북 억제력을 강조하지만, 해외에선 중국 해군 견제에 초점을 맞춘다.
한반도에서 발생할 다양한 위협 중에서 핵추진잠수함이 반드시 투입되어야 할 위협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설정, 기본계획에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핵연료를 선택하는 것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핵추진잠수함 원자로에 쓸 핵연료는 고농축우라늄(HEU)과 저농축우라늄(LEU)이 있다. HEU는 농축도가 높아 소형·고밀도 노심을 만들 수 있어 원자로 크기가 작다. 연료를 교체할 필요도 없어서 핵연료 교체 시설 부담이 줄어든다.
반면 HEU가 무기급 물질로 간주되어 국제 사회의 비확산 논란을 초래할 수 있고, 미국이 유일한 공급원이 되므로 동맹 의존도가 높아진다.
LEU는 HEU와 동일한 출력을 내려면 더 많은 양의 연료와 더 큰 노심이 필요하다. 이는 원자로 크기를 늘려서 잠수함 선체 설계에 제약을 준다.
운영 중 10∼15년마다 핵연료를 교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함정용 사용후 핵연료 저장·처리 시설을 갖춰야 한다. 해당 시설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주민 반발 등이 발생할 수 있다.
핵연료를 선택하는 것은 기술적 문제지만, 해군의 운용 개념도 중요하게 고려된다.
핵추진잠수함이 대응할 위협이 북한 뿐이라면, LEU를 사용할 수도 있다. 반면 중국을 비롯한 역내 잠재적 위협까지 맞서는 것이 핵추진잠수함의 임무가 될 경우엔 가동율 등을 고려해서 HEU가 적절할 수 있다.
비용과 더불어 해군 전력 증강 구조 전반에 대한 고민도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핵추진잠수함은 척당 건조비가 수조원에 달할 가능성이 크다. 건조 시설과 인력 및 공급망 확보까지 고려하면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국방중기계획과 방위력개선비에서 육·해·공군의 비율은 오랜 기간 일정 수준을 유지해왔다. 이같은 비율을 크게 바꾸지 못하는 상황에서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추진하면, 해군의 다른 전력증강 프로그램 추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해군은 노후화한 장보고-Ⅰ급 잠수함을 대체할 장보고-Ⅳ급 확보,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도입, 2030∼2040년 수명주기가 도래할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 대체함정 건조, 노후한 P-3C를 대신할 해상초계기 확보 등을 향후 10여년간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다.
함정 건조는 막대한 비용 지출이 따르는 사업이다. 다른 함정보다 훨씬 비싼 핵추진잠수함까지 더해지면 예산 압박은 한층 커진다.
투자의 균형과 소요 우선순위 설정 등이 세심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핵추진잠수함과 다른 해군 전력증강 사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핵추진잠수함의 정비·운용 등을 뒷받침할 기지 확보를 위한 기준 설정 방법도 기본계획에 담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군 기지 확보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사업으로서 안보·정치·환경·기술 등의 요소가 뒤얽혀 있다. 제주 민군복합항처럼 건설 과정에서 찬반 갈등이 불거지면, 일정 지연이 발생할 위험도 크다.
따라서 기지의 입지와 시설 구축 관련 기준 설정을 기본계획 수립단계서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핵추진잠수함 기지에는 핵연료 교체와 방사성폐기물 관리, 정비 등을 할 수 있는 전용 시설이 필요하다. 이 시설은 방사선 방호 기능도 갖춰야 한다.
해군에서 가장 큰 잠수함인 장보고-Ⅲ보다 대형인 핵추진잠수함이 원활하게 기지를 드나들려면, 수심이 깊고 원양 진출이 쉬운 곳에 기지가 위치해야 한다. 주민 밀집 거주 지역과의 거리를 어느 정도로 유지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시점·일정보다 기술이 더 중요
핵추진잠수함 기본계획에선 건조의 일정·시점·기술이 반영된다. 일반적으로 군 당국의 무기개발·도입은 일정과 시점이 중시되는 경향이 있다.
핵추진잠수함 건조에서도 정부와 군은 실전배치 시점을 2030년대 중반 이후라고 밝히고 있다. 일정과 시점이 먼저 제시된 셈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고난도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라는 점에서 ‘얼마나 빨리 전력화하느냐’보다는 ‘얼마나 현실적인 계획을 수립·실행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래야 리스크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일정·시점보다 기술 확보 및 실증 여부를 중심으로 관련 사안을 점검하면서 기본계획을 다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미 협상이나 국내 개발 또는 해외 도입 등의 방법으로 기술 확보가 이뤄졌을 때를 기본계획의 진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핵연료와 원자로 확보 방안이다.
미국에서 원자로를 도입하면 리스크를 줄이고 신속한 건조가 가능하다.
하지만 기술 종속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미국이 우리가 뜯어보거나 정비를 할 수 없도록 원자로를 밀봉한 상태로 넘기면, 우린 핵추진잠수함 운용기간 동안 미국 기술에 얽매이면서 후속군수지원비는 크게 늘어날 수 있다.
한국에서 원자로를 개발하는 것도 리스크가 있다. 한국이 상업용 원자로를 만든 경험이 있지만, 해상에서 발생하는 진동·충격에 노출되는 함정용 원자로 제작 경험은 없다.
지상에서 시제품을 만들어 시험하고, 이를 토대로 해상시험을 실시해야 한다. 이 과정은 10∼15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추진·동력체계에선 터빈과 냉각 펌프 등에서 발생하는 소음 문제가 기본계획에서 다뤄야 할 중요한 기술적 요소다.
여기서 발생하는 소음은 디젤 잠수함보다 크다. 중국 해군은 핵추진잠수함 운용 초기, 냉각 펌프에서의 소음으로 ‘바다의 경운기’라는 오명을 얻었다. 이 부분을 제대로 해결한 국가는 미국이며, 프랑스도 어느 정도는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망 구축 문제도 기본계획에 포함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미국에선 핵추진잠수함 건조·정비 과정에서 공급망 문제로 일정이 지연되는 사례가 있었다. 건조가 본격화하기 전에 비핵 및 핵 공급망을 갖춰서 건조가 늦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선체나 전자체계 등은 장보고-Ⅲ 잠수함의 공급망을 활용할 수 있다. 다만 핵추진잠수함의 핵심은 원자로 압력용기와 제어봉 등의 핵심 부품 공급망은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외국에서 검증된 기술 또는 장비를 도입하는 방법도 있지만, 국외 구매만으로는 공급망 완성이 쉽지 않다. 국내 기업의 참여가 불가피하다.
관련 기술을 지닌 국내 기업을 탐색하고, 기술 개발 투자 및 시제품 제작·인증 절차를 지원하는 방안을 기본계획에 담아야 한다.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핵 관련 인력 양성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 구축도 이뤄져야 한다.
핵추진잠수함을 만드는 것은 기존의 방위력개선사업보다 훨씬 복잡하고 거대한 프로젝트다. 올해 안에 공개될 핵추진잠수함 기본계획은 국가적 차원의 대형 사업을 추진할 첫 걸음이다. 그만큼 철저하고 세심한 계획 수립이 요구된다. 핵추진잠수함 기본계획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