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진보진영의 ‘거목’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별세했다. 민주화 이후 4명의 진보진영 대통령(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을 만드는 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독보적 선거전략가였다. 비타협적인 언행과 여러 차례의 설화는 이 수석부의장의 인생을 보여주는 또다른 단면이다.
◆“전두환 일당. 10년이 못 가 망할 것”
1952년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난 이 수석부의장은 젊은 시절인 1972년 10월유신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첫 투옥을 겪었다.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 시절인 1980년에는 신군부로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한 김대중 내란음모조작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다. 20대 청년이었던 이 수석부의장은 이때 최후진술에서 “박정희가 18년 만에 비참한 종말을 고했듯이, 당신들 전두환 일당도 10년이 못 가 망할 것이다”며 “나는 당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역사적 범죄를 결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해 진보진영 내에서 주목을 받았다. 1982년 크리스마스 특사로 풀려난 후에도 민청련 상임위 부의장을 맡는 등 1980년대 내내 신군부에 저항하는 반독재운동을 펼쳤다. 그렇게 반독재운동을 하면서 생계를 위해 신림동에서 서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반독재 운동을 하다 당한 고문 등의 영향으로 정계 후반과 은퇴 이후엔 가끔씩 손을 떨거나 말을 더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고, 2020년 21대 총선 선거유세 도중에는 건강악화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진보 대통령 4명 모두 관여 ‘킹메이커’
그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처음 정계에 입문해 2020년 20대 국회의원으로 마무리할 때까지 7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 기간 자신의 선거에서 단 한 차례도 패배하지 않아 ‘선거의 제왕’이라는 평을 받는다.
선거전략가로서의 이미지는 큰 선거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에 복귀한 뒤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이 수석부의장은 조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시장 당선을 이끌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김대중 후보의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을 맡아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와의 ‘DJP연합’ 협상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고 캠프 선대위 기획본부장을 맡아 후보 단일화 및 선거전략 등을 총괄했다.
노무현정부에서 국무총리직을 지낸 그는 김종필 전 총리와 함께 유이한 ‘실세총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강하게 내각을 총괄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한 민주당 정치인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이 이 전 총리의 강한 장악력을 눈여겨본 것이 ‘실세총리’로 이어졌다”고 평했다. 2006년 3·1절 골프 파동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2007년 대선경선에 출마했지만 정동영 후보에 밀렸고, 2008년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이 수석부의장은 이후에도 진보진영 의사결정에 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원로급 인사였다. 2016년 총선에서 당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공천을 주지 않았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해 귀환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2년 대선, 2017년 대선 출마에도 영향력을 보였다. 2018년 민주당 당 대표 당선 후 2020년 21대 총선에서 대승을 이끌었고 승리한 당 대표 신분으로 정계를 떠났다. 이후 2022년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 지지 등 이 대통령 대선가도에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인 지난해 11월 그를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수석부의장에 임명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1987년까지는 민주화의 꿈을 향해 달렸고, 이후에는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이 목표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비타협적 언행은 또다른 단면
진보진영의 원로 인사이자 장관, 국무총리, 집권여당 당 대표 등 고위 공직을 연거푸 맡았지만 대통령직 도전은 2007년 당 경선이 유일했다. 이 수석부의장의 이러한 경로는 당내에서는 존경을 받으나 강경한 언행 등으로 대중적 지지는 약했던 정치적 행보와도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국무총리 시절인 2006년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국무총리와 법무부 장관이 여당 당원인데 공정한 선거관리가 되겠느냐”고 묻자 그는 “홍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했지만 저는 5번의 선거에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맞받았다.
2018년 민주당 대표에 출마하며 이른바 ‘20년 집권론’을 꺼내 야권의 반발을 샀고, 2020년 당 대표 시절에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 비서를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해 논란을 빚었다. 골프와 관련한 논란도 적잖다. 2004년 9월 군부대 오발사고 희생자를 조문하러 가기 직전, 2005년 4월 강원도 동해안 대형산불이 발생한 시기에 골프를 친 사실이 알려져 비판을 받았다. 이후 2006년 ‘3·1절 골프 파문’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1998년 김대중정부 시절 교육부장관으로 재임하면서 추진한 대입제도 개편으로 발생된 이른바 ‘이해찬 세대’는 당시 학력저하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