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별세한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과 인연이 깊다.
군사정권의 탄압 속에서 시대의 변화를 외쳤던 청년에서 민주 정부의 책임자로 성장하기까지 광주 정신과 궤를 같이한 인물이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故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뉴스1·연합뉴스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반독재.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고인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1980년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었다.
전두환 신군부는 5·18 민주화운동 이후 정권 장악을 정당화하기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재야인사를 내란 혐의로 기소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이 사건에 연루돼 투옥했고, 2년 6개월 만에 석방됐다.
훗날 대표적인 정치 조작 사건으로 평가되면서 관련자들은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했다.
고인은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초선 의원 시절부터 그는 군사정권 시기의 진실을 밝히는 과제를 떠안았다.
1989년 5·18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연석청문회에 청문위원으로 참여해 증인으로 출석한 전두환을 상대로 책임 추궁에 나섰다.
전두환이 "광주 발포 상황은 자위권 발동이었다"는 취지로 답변하며 침묵과 회피로 일관하자 이 수석부의장은 "속된 말로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말이 있다. 이토록 철면피한 전두환의 위증을 묵인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핵심 증인들에게 날카롭고 집요한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주목받으며 이때 '면도날'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후에도 그는 정치 전면에서 광주 정신과 역사 바로 세우기에 힘을 쏟으며 21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5·18 왜곡 처벌법 추진에 앞장섰다.
광주 정치권과 5·18 관련 단체 등에서는 추모 분위기가 고조됐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은 26일 추모논평을 내 "광주가 던진 질문 앞에서 국가는 침묵해서는 안 되며 진실 규명과 책임 있는 정치로 답해야 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며 "그 정신을 지역과 현장에서 책임 있게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심극정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장도일 "군사정권의 탄압을 직접 겪은 당사자로서 광주의 아픔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던 정치인"이라며 "광주 진상 규명과 역사 회복에 헌신한 그의 삶은 5·18 정신 그 자체였고 그 정신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고 평가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주의의 설계자, 모든 대통령의 스승, 늘 광주의 편이셨던 큰 어른"이라며 "140만 광주 시민과 함께 빕니다. 총리님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