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값이 사상 첫 5000달러를 돌파하고, 은값도 100달러 시대를 열었다.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트럼프 리스크’로 인해 달러화를 대체할 안전 투자처로 귀금속 열풍이 부는 반면 ‘디지털 금’으로 불렸던 비트코인은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현금과 국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서 실물자산과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하는 모습이다.
26일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현재 국제 금 시세는 온스(oz)당 5084달러, 은 시세는 109.49달러로 집계돼 각각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추진으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마러라고 합의’가 이미 가동됐다는 관측이 결정적 기폭제가 됐다. 마러라고 합의는 미국이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해 인위적으로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다자 통화 협정 구상이다. 지난주 달러 지수가 1.6% 하락하며 지난해 5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고, 이러한 급격한 약세가 금값을 밀어올렸다는 분석이다.
지난주에만 8.5% 급등한 금값은 화폐와 국채보다 실물자산을 찾는 투자자들의 심리를 반영한다. 그린란드 분쟁 등으로 인한 지정학적 불확실성,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 훼손이 과도한 통화 완화와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우려, 연준의 추가 기준금리 인하 기대 등이 금값 상승의 동력으로 해석된다. 지난 1년간 이미 약 70% 오른 금 시세는 1월도 채 지나지 않아 국내외 전문가들이 제시한 올해 목표가를 이미 넘어섰다.
은값 역시 2025년 150% 폭등한 기세를 이어가며 이번 달 40% 넘게 오르고 있다. 금 가격과 연동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 은은 산업용 수요 증가와 함께 만성적인 공급 부족 문제가 부각되면서 상승 압력을 더하고 있다.
주요국 유동성 확대 움직임, 트럼프식 거친 외교의 불확실성과 차기 연준 의장 지명 관측 등은 한동안 귀금속 강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 무게를 싣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초부터 각종 지정학 리스크를 높여 놓으면서 급락한 국채 가격이 금 수요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새로 취임할 연준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맛대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치게 되면 증시 불확실성과 달러 약세 위험은 커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금과 비트코인 자금 흐름은 상반되는 모습이다. 지난 1년 동안의 시세를 비교할 때 금은 온스당 2600달러 수준으로 시작해 5000달러를 돌파한 반면, 같은 기간 10만달러를 내다보던 비트코인은 약 8만8000달러로 8%가량 하락해 우하향 중이다.
금융정보 플랫폼 파사이드 인베스터에 따르면 특히 비트코인 현물 ETF는 금값이 최고가를 향해 달려가던 1월 셋째 주에 약 13억달러의 대규모 자금이 유출됐다. 같은 시기 금과 은 ETF에는 각각 수십억달러, 수억달러대의 순유입이 있었던 것과 대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