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피(코스피 5000) 시대’가 열렸음에도 원·달러 환율은 1400원 중후반대에서 고공행진하고 있다. 원화 가치가 지속해서 떨어질 경우 외국인 투자자 이탈로 ‘육천피(코스피 6000)’ 도약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행히 미·일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퍼지면서 26일 환율 상승세가 다소 진정되는 모양새다.
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27일 4042.83에 장을 마감하며 4000선 고지를 처음 밟은 코스피는 석 달이 채 안 된 지난 22일 장중 5000을 돌파했다. 이 기간 원·달러 환율은 1431.7원(오후 3시30분 주간거래 종가)에서 1469.9원으로 뛰었다.
통상 주가와 환율은 반대로 움직이곤 했다. 코스피 ‘큰손’인 외국인이 주식을 사면 달러를 대거 원화로 바꾸면서 원화 가치가 올랐다. 최근 외국인은 12월 3조5458억원, 새해 들어 지난 23일까지 2조1288억원어치 국내 주식을 순매수했다. 그럼에도 환율은 오름세였다. 외국인 원화 수요보다 국내 달러 수요가 대폭 늘어난 탓이다.
문제는 외국인을 코스피에 붙잡아둘 ‘환율 임계점’이 얼마인가다. 최근 코스피 급등을 이끈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약화되고 강달러에 대한 시장 기대가 꺾이지 않을 경우 외국인의 이탈과 이로 인한 원화 약세, 다시 외국인 이탈이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빚어질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환율로 인한 외국인 이탈 우려는 크지 않다고 본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현재 외국인 투자 유입은 반도체와 조선·방산주 등 때문”이라며 “반도체는 2027년까지 슈퍼사이클이 이어질 전망이어서 당분간 환율이 외국인 유입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반도체 이후에도 외국인이 한국 시장에 머물게 하려면 정부가 로봇·인공지능 등 국가전략산업을 제때 육성해야 한다”며 “아울러 좀비기업·산업의 구조조정을 병행하는 데 성공하면 환율은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투자자들은 아시아 증시에 지역·섹터별로 투자하기에 원화 환율 자체보다 일본 엔·대만 달러와의 상대적 움직임이 중요하다”며 “최근 3국 모두 달러화 대비 자국 통화가 약세로, 이런 동조화 흐름이 지속되면 국내에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환율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경제성장률이 올라가고 있고 한·미 금리 차도 줄어드는 흐름이라 향후 원·달러 환율은 안정화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지난 23일 일본은행(BOJ)이 주요 은행 등을 상대로 ‘레이트 체크’(rate check)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미·일 당국이 공동 시장개입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는 것도 청신호다. 레이트 체크는 은행 거래 상황을 문의하는 행위로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 전 단계로 여겨진다.
로이터통신은 25일(현지시간) 미·일 공동개입 가능성을 분석하며 글로벌 외환 시장에서 엔화뿐 아니라 원화까지 지지하는 이른바 ‘마러라고 합의’가 실제 가동됐다는 추측이 무성하다고 보도했다. 소식이 전해지며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장보다 25.2원 내린 1440.6원(오후 3시30분 종가)으로 장을 마쳤다.
다만 회의론도 제기된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한국의 펀더멘털이나 금융시장을 둘러싼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에 엔화 움직임만으로 원화 가치가 큰 폭으로 변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