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튼튼해 소주 2병은 껌이었는데”… 암세포가 ‘편애’하는 술의 배신

“마셔도 되나” 말고 “왜 마시나” 물어야…‘한 잔’의 배신

“술이요? 말술이었죠. 소주 두 병은 그냥 ‘워밍업’이었으니까.”

 

‘하루 한 잔쯤이야’라는 말이 반복되는 일상이 건강의 경계선을 조금씩 넘기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서울 강북의 한 선술집. 구석 자리에 앉은 김모(64)씨가 쓴웃음을 지으며 빈 잔을 만지작거렸다. 젊은 시절 그는 ‘상남자’로 통했다. 회식 자리에선 늘 끝까지 남았고, 다음 날 멀쩡하게 출근하는 게 자랑이었다. 건강검진 결과표도 늘 ‘정상’이었다. 적어도 3년 전 간암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주변에서 다들 부러워했죠. 간 튼튼하다고. 근데 그게 독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술을 끊은 지 3년이 넘었지만, 김씨의 후회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사회엔 여전히 술에 관대한 ‘오래된 미신’이 지배한다. “반주 한 잔은 약주다”, “와인 한 잔은 혈액순환에 좋다”는 식이다. 하지만 최근 의학계와 정부가 내놓는 메시지는 섬뜩할 정도로 단호하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그 기준선이 사실은 낭떠러지 바로 앞이었다는 경고다.

 

◆“하루 한 잔은 약?”…옛말 된 지 오래

 

“한두 잔 정도야 뭐.”

 

이런 안일한 생각에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보건복지부의 암 예방 수칙이 소리 소문 없이, 그러나 아주 강력하게 바뀌었다. 과거 ‘하루 한두 잔 이내로 마시기’였던 권고 기준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바뀐 문구는 서늘하다.

 

“암 예방을 위하여 한두 잔의 소량 음주도 피하기.”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줄이자’가 아니라 ‘피하라’는 명령조에 가깝다. 이유는 명확하다. 데이터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기준을 보면 남성은 소주 7잔, 여성은 5잔 이상을 주 2회 넘기면 ‘고위험 음주자’ 딱지가 붙는다. 이들의 질병 발생률은 술을 안 마시는 사람보다 2.5배 뛴다. 간만 망가지면 다행이다. 구강암, 식도암, 간암까지 온몸이 ‘암세포의 표적’이 된다.

 

◆바다 건너 미국도 ‘경고등’…“매일 마시는 한 잔이 독”

 

미국 연방정부도 최근 알코올 관련 보고서 초안을 통해 심각한 경고장을 날렸다. 핵심은 ‘습관’이다. 어쩌다 폭음하는 것보다 무서운 게 ‘매일 마시는 한 잔’이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정기적인 소량 음주가 조기 사망 위험을 뚜렷하게 높인다”고 못 박았다. 그래프는 가파르다. 주당 7잔을 넘기는 순간 사망 위험 곡선이 꿈틀대고, 9잔을 넘어서면 수직 상승한다.

 

여기서 ‘한 잔’을 얕보면 안 된다. 맥주 한 캔, 와인 한 잔, 위스키 샷 한 잔이 기준이다. 한국인의 ‘국민 술’ 소주로 치면 3분의 1병이다. 삼겹살집에서 “딱 한 잔만 더”를 외치는 순간, 당신은 이미 위험선을 넘고 있다.

 

◆여성이 더 위험하다…암세포의 ‘편애’

 

보고서가 지목한 가장 끔찍한 대가는 역시 ‘암’이다. 대장암, 간암, 유방암 등 7가지 암이 술과 직결된다.

 

주 1회, 딱 한 잔만 마셔도 비음주자보다 발병 확률이 높았다. 남성은 대장과 식도 쪽이, 여성은 유방암을 포함한 상체 소화기 암 쪽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종류와 상관없이 알코올 섭취 자체가 암·사망 위험과 직결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GC녹십자의료재단 제공

특히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더 취약하다. 같은 양을 마셔도 알코올 분해 효소가 적어 간이 받는 타격이 훨씬 크다.

 

전문가들은 “알코올이 몸에 들어와 아세트알데히드로 바뀌는 순간부터 세포는 맹독성 공격을 받는다”며 “이 과정이 반복되면 돌연변이, 즉 암이 생기는 건 시간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사고 부르는 술…‘적당히’는 없다

 

암뿐만이 아니다. 술은 사고를 몰고 다닌다. 낙상, 교통사고 등 의도치 않은 불행 뒤엔 늘 술이 있다.

 

과거 애주가들의 핑계가 되었던 ‘소량 음주의 뇌졸중 예방 효과’도 헛된 믿음으로 판명 났다. 일정량을 넘어서는 순간 예방 효과는 증발하고 뇌출혈 위험만 남는다.

 

미국의 공식 지침은 아직 ‘남성 2잔, 여성 1잔’을 권고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이마저도 “안전지대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권장량은 ‘이 정도면 당장 죽진 않는다’는 마지노선일 뿐, 건강을 보증수표가 아니란 얘기다.

 

◆패러다임의 전환…“굳이 마셔야 합니까?”

 

한 대학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이렇게 반문했다.

 

“이제 환자들에게 ‘얼마나 마셔도 되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화가 납니다. 질문 자체가 틀렸어요. ‘이걸 굳이 내 몸에 부어야 하나’를 물어야 할 때입니다.”

 

술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윤활유였다. 하지만 그 대가로 지불하는 비용이 너무 비싸졌다. 과학은 이제 냉정한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적당히’라는 단어 뒤에 숨기에, 술은 너무나 명백한 1급 발암물질이다. 당신의 술잔 속에 담긴 건 ‘흥’이 아니라 ‘독’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