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선] ‘협치와 통합’의 다리를 다시 세우자

진정한 협치는 ‘권력·책임’ 나누기서 출발
인사검증제도 개선… 韓 복합위기 묘수 찾아야

강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놓는 일은 강물 위로 돌을 던지는 것과 다르다. 돌은 파문을 일으키며 잠시 시선을 끌지만 다리는 서로 다른 두 땅을 잇고 사람을 오가게 한다. 이혜훈 낙마는 우리 정치에 ‘협치와 통합’의 다리가 얼마나 허약한 지반 위에 세워지려 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재명정부가 야심 차게 시도한 ‘보수 인사 영입’ 실험은 지명 철회라는 미완의 교각만을 남겼다.

우리는 무너진 잔해 앞에서 낙담하기보다 왜 이 다리가 무너졌는지를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실패의 원인 속에 우리가 반드시 건너가야 할 미래의 설계도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혜훈 실패는 예고된 참사였다. ‘통합’ 명분은 화려했으나 ‘검증’의 기둥과 ‘신뢰’의 시멘트는 없었다. 도덕적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방식에 있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사람만 데려다 놓는다고 해서 통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 결합일 수는 있어도 화학적 결합이 아니다. 진정한 협치는 상대 진영의 인물을 ‘트로피’처럼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책임을 나누는 제도의 거버넌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사민당과의 연정을 구성하며 단순히 장관직 몇 자리를 내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치열한 협상 끝에 구체적인 정책 합의문을 작성했고 노동·사회 등 핵심 부처의 운영권을 파트너에게 과감히 이양했다. 스리랑카의 거국내각 실험도 정당 간 양해각서를 통해 내각 구성의 원칙을 먼저 세웠다.

성공한 협치 모델들의 공통점은 ‘누가’ 자리에 앉느냐보다 ‘무엇을’ 함께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선행되었다는 점이다. ‘협치와 통합의 인사’는 대통령의 시혜가 아니다. 공동체의 복합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생존의 기술이자 공공성의 헌신이다.

우리 앞에는 정치적 수사로는 다룰 수 없는 거대한 경제적 위기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2026년 대한민국은 ‘적극적 확장 재정’을 통한 위기 극복과 ‘재정준칙’을 통한 건전성 확보라는 두 가지 상충하는 과제 사이에 끼어 있다. 경기 침체와 K자형 양극화의 늪을 건너려면 재정을 풀어야 하지만 고령화와 부채라는 미래의 짐을 생각하면 곳간을 잠가야 하는 딜레마다. 난제를 풀 해법은 교과서적인 양자택일이 아니다. 위기 때는 유연하게 풀고 평시에는 엄격하게 조이는 ‘중간지점의 정치적 묘수’를 찾아야 한다.

‘협치형 인사’가 선택이 아닌 필수여야 하는 이유다. 재정 확장은 야당의 동의나 묵인으로 힘을 받을 수 있고 재정 건전화는 여당 지지층의 고통 분담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야가 함께 추천하고 검증한 예산 사령탑이 “지금은 빚을 내서라도 미래에 투자해야 할 때”라고 설득하거나 반대로 “지금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라고 호소할 때 비로소 정책의 성공 가능성은 제고된다.

실패를 딛고 다시 ‘협치와 통합’의 다리를 놓기 위해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진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순히 국면전환용 카드로 통합 인사를 활용하려 한다면 ‘이혜훈 사태’는 반복될 것이다.

진정성은 말이 아닌 시스템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이진숙 강선우 이혜훈의 연속 실패’는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의 오류를 말한다. 야당과 사전에 ‘정책의 레드라인과 그린라인을 조율하는 정책 연합’의 프로세스도 요구된다. 국정 운영의 리스크를 분산하고 정책 효과를 높이는 지혜다.

“모든 훌륭한 문학은 자기모순을 껴안는 것”이라 했다. ‘협치와 통합의 정치’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생각을 넘어 다른 진영과 함께하는 모순의 과정 없이 우리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혜훈 카드는 실패했지만 ‘통합과 협치’의 과제마저 폐기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착공식이 아니라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신뢰의 교각을 세우는 정교한 거버넌스의 설계다.

더디고 고통스러운 과정일지라도 우리는 다시 그 길을 가야 한다. 확장 재정과 재정 건전성이라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에서 우리 경제가 추락하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장대가 ‘협치와 통합’이다. 대한민국의 지속과 발전을 위해 대통령은 다시금 신발 끈을 동여매고 무너진 다리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번에는 돌이 아니라 진짜 다리를 놓기 위해서 말이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