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한 잔이 보약”…대장암 사망 위험 40% 낮춘 의외의 비결

“마셔도 될까?” 망설였던 커피 한 잔…대장암 환자에겐 ‘생명수’였다

“수술하고 나서 제일 생각나는 게 아이스 아메리카노였어요. 그런데 혹시나 장에 자극이 갈까 봐 꾹 참았죠. 병문안 온 지인들이 커피 마시는 냄새만 맡아도 어찌나 군침이 돌던지...”

 

매일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 속 폴리페놀 성분이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구원투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규명됐다. 뉴시스

지난해 대장암 3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마친 직장인 김모(52) 씨는 자타공인 ‘커피 애호가’였다. 하루 3잔은 기본으로 마시던 그였지만, 암 진단 후 커피는 금기 식품 1호가 됐다. 카페인이 암세포를 자극하거나 수술 부위에 무리를 줄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앞으로 김 씨는 죄책감 없이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커피잔을 들어도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매일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가 대장암 환자의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가장 두려운 ‘재발’까지 막아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루 3잔의 마법…“더 많이 마실수록 예후 좋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전대학교 서울한방병원 동서암센터 조종관 교수팀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놨다. 대장암 환자 5442명의 데이터를 분석(메타분석)한 결과, 커피가 암과의 싸움에서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연구팀이 발견한 핵심은 ‘용량 의존적 관계(Dose-response relationship)’다. 쉽게 말해, 커피를 한 잔이라도 더 마실수록 결과가 좋았다는 뜻이다.

 

수치는 명확하다. 하루에 커피를 1잔 더 마실 때마다 사망 및 재발 위험은 약 4%씩 떨어졌다. 이를 하루 3잔까지 늘리자 위험도는 약 12%나 감소했다. 커피가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 암 환자의 생존 그래프를 바꾸는 변수가 된 셈이다.

 

◆‘3기 환자’에게 효과적…사망 위험 40% ‘뚝’

 

이번 연구에서 눈여겨볼 점은 병기가 꽤 진행된 ‘3기 대장암 환자’들에게서 가장 드라마틱한 효과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초기 암보다 재발 걱정이 훨씬 큰 3기 환자들의 경우 꾸준한 커피 섭취가 사망 위험을 무려 40% 이상 낮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술 후 5년 이내 재발률이 30~50%에 달해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인 환자들에게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다.

 

혹시 ‘카페인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려서 못 마시는데 어쩌나’ 하는 걱정도 접어둘 만하다. 연구팀은 일반 커피뿐만 아니라 ‘디카페인 커피’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종관 교수팀은 “커피의 항암 효과는 단순히 카페인 때문이 아니다”라며 “커피 원두에 포함된 폴리페놀 등 다양한 생리 활성 성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고 염증을 줄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젊은 대장암 1위’ 한국, 커피가 구원투수 될까

 

이 연구 결과가 유독 반가운 건 대한민국이 처한 아이러니한 현실 때문이다.

 

국제 의학 학술지 ‘랜싯 소화기병학 및 간장학(The Lancet Gastroenterology & Hepatology)’에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20~49세 ‘젊은 대장암’ 발병률 1위(인구 10만명당 12.9명)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맵고 짠 음식, 잦은 회식 문화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 또한 세계적이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Euromonitor) 2023년 조사 자료를 보면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405잔으로, 세계 평균(152잔)의 2.5배가 넘는다.

 

어쩌면 한국인들이 밥보다 자주 마시는 커피가, 알게 모르게 우리 장 건강을 지키는 방어막 역할을 해왔을지도 모른다.

 

그간 장에 무리가 갈까 봐 커피를 멀리했던 환자들에게 이번 연구는 ‘즐거운 치료제’가 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실제로 해외 유수 기관들도 이미 커피의 효능에 주목해 왔다.

 

2020년 미국 다나-파버 암연구소는 말기 대장암 환자가 커피를 하루 4잔 이상 마실 경우 생존율이 36%나 높아진다는 결과를 발표했고, 하버드 의대 역시 커피가 인슐린 저항성을 낮춰 암세포 성장을 늦춘다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바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암학회(AACR)의 공식 학술지인 ‘Cancer Epidemiology, Biomarkers & Prevention(CEBP)’ 온라인판에 게재되며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오늘 점심 식사 후 나누는 커피 한 잔. 그 향긋한 한 모금에 건강을 지키는 힘이 숨어있을지 모른다. 대장암 환자라면 더더욱, 그 한 잔을 주저할 이유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