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일 두 정상이 다시 마주 앉았다. 관계 개선을 둘러싼 기대와 신중한 전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한일 관계를 둘러싼 감정의 골은 여전히 깊다. 식민 지배의 상처는 세대를 건너 이어지고, 역사 문제는 외교와 정치의 담론 속에서 되풀이되어 왔다. 국가 간 협의와 합의가 반복되어 왔지만, 과거를 둘러싼 감정의 문제는 여전히 쉽게 봉합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외교적 계산 바깥에서 조용히 축적돼 온 또 하나의 시간이 있다.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스스로 한국 땅을 찾아와 고개를 숙이고, 그것도 20년 넘게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마음으로 참회의 뜻을 전해오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장면이다.
‘남북통일을 원하는 일본인회’는 2001년부터 서대문독립공원과 서대문형무소 일대에서 순국선열정신 선양대회와 한일 합동 위령제를 이어오고 있다. 일본의 역사 왜곡과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통감하며, 일본 정부를 대신해 민간 차원에서 사죄와 추모의 뜻을 전하는 행사다. 사토 미도리 회장은 “한국인들이 납득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외교적 수사도, 형식적 유감 표명도 아니다. 그는 17년 넘게 사비를 들여 수십 차례 한국을 오가며 위령제를 주관했고, 일본의 유학생과 지방 정치인, 종교인들을 직접 서대문형무소로 안내해 역사의 현장을 마주하게 했다.
이 위령제의 특징은 ‘자발성’에 있다. 국가의 요청도, 외교적 합의도 아닌 개인과 신앙 공동체의 선택에서 출발했다. 일본 사회 내부에서도 “언제까지 사죄해야 하느냐”는 피로감이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의 행보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본인회는 사죄를 멈추지 않았다. 피해자가 납득할 때까지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 도리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과거를 지우지 않고 기억 위에 책임을 쌓아 올리려는 윤리적 결단에 가깝다.
이 활동의 배경에는 통일교의 평화사상이 놓여 있다. 문선명 총재는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한국과 일본의 화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고, 일본 신도들은 그 요청을 ‘신앙의 실천’으로 받아들였다. 위령제는 추모 행사에 그치지 않고 가해의 역사 앞에 스스로 책임의 주체로 서겠다는 선언이었다. 일본의 스님 등 이웃종교 인사들까지 참여해 위령 의식을 진행하고, 나아가 세계 각국의 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노력은 사회적으로도 일정한 평가를 받았다. 2013년 국가보훈처는 일본인회에 감사패를 수여했다. 일본인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이 행사는 국가보훈부 후원 명칭을 사용하는 공식 애국 행사로 자리 잡았다. ‘애국’이라는 말이 반드시 국적과 혈통에만 묶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 장면은 조용히 보여준다. 과거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타인의 고통 앞에서 책임을 선택하는 태도 역시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식일 수 있다는 메시지다.
국내 거주 통일교 외국 신도로 구성된 재한외국인회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고종황제가 돌아가신 날에 맞춰 지내는 기신제에 동참해 사죄의 기도를 올린다. 고종황제의 승하는 일제의 강압적 지배가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그 경과와 원인을 두고 지금까지도 다양한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신제에 참여해 사죄의 마음을 전한 재한외국인들의 행위는 식민지 시기의 비극을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직시하려는 태도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지난 1월 21일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에서 107주기 기신제가 열렸는데, 혹한 속에서도 자리를 지킨 이들의 모습은 평화가 몸으로 감당하는 선택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재한외국인회는 일본인 비중이 가장 크다. 이들의 활동은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았고, 외부를 의식한 과시로 읽히기도 어렵다. 반복된 실천은 신앙이 요구하는 참회의 윤리를 일상 속에서 감당하려는 태도로 이어져 온 것이다.
위령제나 기신제 참여가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라면, 한일해저터널과 같은 미래 협력 구상은 그 위에 새로운 관계를 세우려는 시도다. 과거의 책임과 미래의 비전이 함께 갈 때만 화해는 현실이 된다. 물론 이러한 사례가 한일 관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또한 특정 종교나 단체를 무비판적으로 평가하자는 주장도 아니다. 다만 이 장면은 우리 사회에 분명한 사유의 지점을 남긴다. 애국이란 무엇이며, 평화는 어떤 선택을 통해 실현되는가. 분노의 반복과 책임의 수용 사이에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죄를 선택한 일본인들의 행보는 거창한 정치 담론보다 작고 느리지만, 진정성이 있다. 국가가 하지 못한 일을 신앙 공동체가 감당해 온 이 시간은 한일 관계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평화는 실천이며, 화해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이들은 오랜 시간 증명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