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또 첨잔이야?

여러 사람이 식사할 때는 술을 곁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때 사람들은 서로에게 술을 따라준다.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특히 동양권에서는 자기가 직접 술을 따라 마시는 것을 좋지 않게 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술을 언제 따라주느냐는 민족이나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어떤 민족은 상대방의 술잔이 다 빌 때까지 기다렸다가 따라주고, 다른 민족은 술잔이 반쯤 비면 바로바로 따라준다. 전자는 한국 사람의 경우이고 후자는 일본 사람의 경우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화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서 술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 일본에 체류한 적 있는 한국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일본에 온 지 얼마 안 돼 일본 친구의 가족 행사에 초대받았다. 외국인의 등장 때문인지 처음에는 분위기는 좀 어색하고 경직되었다. 하지만 한두 잔의 술이 들어가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문제는 첨잔이었다. 그의 잔이 조금이라도 비면 친구 부모님은 바로 첨잔하려고 하셨다. 부모뻘의 윗사람이 첨잔하려고 하시는데 가만히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여겨 남은 술을 서둘러 비우고 그 술을 정중히 받았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그는 자기의 평소 주량을 넘기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도 조금 힘들었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이틀을 고생했다. 이렇게 고생한 결과 얻은 깨달음은 두 나라의 첨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친구 부모님은 외국인 손님의 술잔이 비기 전에 채우려고 하신 건데 그는 그것을 매번 술을 권하는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요컨대,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은 모두 예의를 갖추려고 했지만, 그 방식이 달랐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일본에서는 첨잔해도 되지만 한국에서는 첨잔을 잘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는 첨잔을 잘 하지 않는 걸까? 이에 대한 대답은 제사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제사에서는 돌아가신 분에게 세 번의 술을 올린다. 첫 번째 잔(초헌)은 맏아들이 올리고 두 번째 잔(아헌)은 맏며느리가 올리고 마지막 잔(종헌)은 이 두 사람 다음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이 올린다. 그런데 이 사람은 맏아들이나 맏며느리가 아니라서 술잔의 70% 정도만 채워서 올린다. 이렇게 하고 나면 맏아들이 술 주전자를 들고 술을 세 번에 나눠 부으면서 나머지 30%를 채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 술잔을 받아 그 술잔의 술로 세 번 나눠 붓는다. 이런 제사 문화로 인해 첨잔은 제사 때나 하는 것이고, 일상적인 자리에서 첨잔하면 자기를 죽은 사람처럼 여긴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유학자들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이것은 일종의 미신이다.

장한업 이화여대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 주임교수

알다시피 일본에는 한국처럼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놓고 긴 절차에 따라 지내는 제사가 없다. 제사도 정해진 날에 지내기보다는 일상적으로 추모하는 경우가 많다. 가정에서 추모한다면 향을 피우거나 꽃, 차, 밥, 과자를 올리고 합장하고 묵념하는 데 그친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술을 따르고 첨잔하는 문화 자체가 없다. 그러니 첨잔을 해도 죽은 사람처럼 여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문화사회는 민족, 문화,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술을 마시기 전에 서로의 문화를 설명하고 상대방이 첨잔을 원하는지 아닌지 먼저 물어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문화는 다를 뿐이지 옳고 그른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장한업 이화여대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