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고준위 방폐장도 시급하다

사용후핵연료 원전 임시저장 포화
당장 착수해도 2060년 시한 못 지켜
부지 선정 맡은 고방위 구성은 지연
‘생활폐기물 직매립 혼선’ 전철 안 돼

올해부터 수도권에서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전면 금지됐다. 소각이나 재활용 등을 거친 소각재와 잔재물 등만 땅에 묻을 수 있다. 소각시설이 부족한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선 처리 비용이 급등했다는 전언이다. 처리 못 한 폐기물이 충청·강원권으로 반출되는 바람에 지역 간 갈등마저 빚고 있다.

이런 혼선이 원자력발전업계에는 남일 같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인 핵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는 수만 년간 고온과 방사능이 발생하는데, 이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한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시설 없이 원전에서 임시저장하고 있는 게 우리 형편이다. 임시저장 용량이 한계치에 이르러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는 시급히 꺼야 할 발등의 불이 됐다.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실에 따르면 고리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포화율은 올해 95.1%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원전에서 연소 후 남은 사용후핵연료는 먼저 발전소 내 수조에 저장되는데, 2030년 한빛·2031년 한울·2032년 고리 순으로 포화 상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황계식 논설위원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등이 없는 만큼 저장조가 포화하면 원전 부지 내 건식 저장시설로 옮겨야 하는데, 이는 사업자가 임의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건식 저장시설 등의 설치는 신설된 국무총리 소속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고방위)의 승인과 지역 주민의 동의가 필요하다. 핵폐기물 처리시설인 고준위 방폐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고려하면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이 특별법은 2050년까지 중간저장시설을, 2060년까지 영구처분시설을 각각 건설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부지 선정 절차와 주민 의견 수렴 방식 등도 법에 담겼다. 정부는 ‘2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에서 고준위 방폐장의 부지 선정 절차 착수 후 건설을 마치기까지 37년이 걸릴 것으로 봤다. 당장 시작해도 2060년 기한을 맞출 수 없는 실정이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의 가장 큰 고비는 부지 선정이다. 정부는 1980년대부터 경북 울진·영덕·영일, 충남 태안 안면도, 인천 옹진군 굴업도, 전북 부안 등지에서 9차례나 부지를 선정하려 했지만, 지역사회의 격렬한 반대에 무산된 바 있다. 그런데도 방폐장 부지 선정을 맡은 고방위는 회의를 열 수 있는 성원조차 꾸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답답한 노릇이다. 상임위원은 임명 절차를 밟고 있고, 국회의 위원 추천은 한없이 지연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관련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도 시급하다. 고방위의 정상 운영에 정부와 국회가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이미 핀란드는 작년부터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폐장 운영에 들어갔다. 스웨덴과 프랑스, 미국, 독일 등도 관련 법을 통해 처분시설 건설 준비나 부지 선정에 들어갔다. 일본에선 지자체 3곳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유치를 신청했는데 3단계 선정작업 중 2단계까지 진행된 지역은 없다고 한다. 한·일이 이 문제에서 협력을 모색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 과정에서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을 둘러싼 혼란이 반복돼선 안 된다.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은 제도 시행이 예고된 지 4년이 지나도록 주민 반발 등으로 수도권에서 단 한 곳의 신규 공공 소각장도 짓지 못한 채 헛바퀴만 돌렸다. 주무 부처인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갈등 관리의 부담을 지방정부와 주민에게 전가한 채 정책 집행 과정에서 오락가락했다는 비판이 크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원전은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위한 최적의 에너지원이다. 이재명정부가 진보정부의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난 것도 그 때문이다. 원전 증설이 불가피하다면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도 시급한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원전 증설과 고준위 방폐장 건설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생활폐기물 직매립 혼선에서 드러났듯 정부가 지원과 공론화 과정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선 안 된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통해서도 고준위 폐기물의 양을 줄일 수 있다. 미국이 우리에게 약속한 재처리 권한을 조속히 현실화하는 외교적 노력도 긴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