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앞지르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다. 인공지능(AI) 산업의 슈퍼사이클(초호황기)과 함께 시작된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HBM) 성과의 이면에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SK하이닉스만의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과거 부실기업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의 미래 가능성을 보고 과감한 인수에 나선 ‘승부사’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선구안’이 적중했다는 평가다.
28일 SK하이닉스가 발표한 지난해 영업이익(47조2063억원)은 삼성전자가 최근 발표한 잠정 영업이익(43조5300억원)을 뛰어넘는 기록이다. 지난 한 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책임지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뿐 아니라 반도체·가전·모바일 등을 모두 포함한 삼성전자의 전사 연간영업이익도 3조원 이상의 격차로 추월했다. 여기에 SK하이닉스가 지난해 4분기 기록한 58%라는 경이로운 영업이익률은 같은 기간 54%를 기록한 TSMC의 영업이익률을 4%포인트 차이로 앞서는 수치다.
SK하이닉스가 이처럼 경이로운 영업이익률을 달성한 데는 HBM 시장을 겨냥한 발빠른 기술 개발과 공격적인 투자 전략이 주효했다. SK하이닉스와 SK그룹은 ‘메모리 다운턴(불황)’ 시기에도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에 과감하게 나서며 HBM3E(5세대)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했다.
‘부실기업’이라는 오명을 쓰며 존속이 위태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지배자’로 우뚝 선 SK하이닉스의 성과를 두고 세계 반도체업계에선 역사상 유례가 없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하이닉스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LG의 반도체 사업을 넘겨받은 현대전자가 2001년 재도약을 꿈꾸며 지은 이름이지만 이후 채권단 공동관리(워크아웃)를 받는 등 뼈아픈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2011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승부수를 던졌다. 그룹 내부에서조차 무리한 인수합병(M&A)이라는 반대론이 나왔고, 인수 주체였던 SK텔레콤의 주가까지 폭락할 만큼 시장 반응이 차가웠지만 최 회장은 인수를 밀어붙였다. 최 회장은 2012년 재탄생한 SK하이닉스의 공동대표를 맡으며 책임경영에 나섰다. 이후 SK하이닉스 부활에 사활을 건 최 회장의 결단과 행보는 ‘무리수’가 아니라 ‘신의 한 수’였음을 증명했다.
이제 눈은 향후 SK하이닉스의 성장을 이어갈 HBM 사업 전략과 올해 성과에 쏠린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차세대 격전지로 떠오르는 HBM4(6세대) 시장에서 주도권을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9월 HBM4 양산 체제를 구축한 이후 엔비디아에 대량의 유상 샘플을 공급해 왔으며, 조만간 최종품 양산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청주 M15X·P&T7’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미국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장’ 등에 투자를 통해 생산 역량 강화에 힘쓴다.
최 회장도 다음 달 미국 출장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실리콘밸리 주요 기업과 접촉하며 AI 생태계 협력 가능성을 타진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의 향후 실적에 대한 전망도 낙관적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2026~2027년 메모리 공급 부족이 구조적으로 예견되는 상황에서 D램과 낸드(기업용 SSD) 가격 상승으로 영업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