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타살”…근조화환 시위에 경기도의회는 또다시 침묵 [오상도의 경기유랑]

전공노, ‘경기도의회 직원 사망’ 책임규명 요구 근조화환 시위
경기도의회, 첫 근조화환 지하실로 옮겼다가 제자리 돌려놔
“유족이 원치 않는다” 보도 자제 요청…책임 방기 비판 고조
구조적 문제 지닌 도의회 출장…사무직 직원에게 책임 전가?
수십 개 근조화환 경기도의회 1층 점령…“경위 명백히 밝혀야”

26일 오전 회사 이메일로 익명의 편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JYC’라는 영문 이니셜 아래에는 큼지막한 사진이 첨부돼 있었죠. 국화로 장식된 근조화환(謹弔花環)이었습니다. 화환에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진상규명하라. 실무자는 죽어 나가고 의원들은 유람가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지난 26일 오전 경기도의회 로비에 설치됐던 첫 근조화환. 이 화환은 지하로 옮겨졌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독자 제공 

이 화환은 같은 날 오전 10시30분쯤 경기도의회 로비에 처음 놓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짐작건대 경기도의회 의원들의 해외출장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던 도의회 직원이 이달 20일 죽음을 택한 걸 애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도의회의 처신을 비판한 제 기사를 읽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기사의 제목은 <“누가 이익을 봤나?”…‘억울한 죽음’ 부른 경기도의회 해외출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근조화환은 불과 10여분 만에 지하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은 강하게 항의했고 전공노 전국 지역지부가 참여하는 근조화환 시위로 번졌습니다.

전공노 지역지부들이 경기도의회에 보낸 근조화환들. 연합뉴스

◆ 경기도의회 덮은 근조화환들의 외침…“진상규명”

 

경기도의회 직원의 안타까운 죽음을 둘러싸고 책임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29일 전공노에 따르면 이 단체는 전날부터 본격적인 근조화환 시위에 들어갔습니다. 

 

핵심은 경기도의회 ‘국외 출장비 의혹’이고, 발단은 소리소문없이 지하로 옮겨진 첫 근조화환이었습니다. 전공노 측은 수백개의 근조화환이 도의회를 둘러쌀 것이라며 행동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전날 오전 8시쯤 경기도의회 1층 로비에는 지역지부 명의로 고인을 추모하는 근조화환 3개가 놓였습니다. 도의회는 이마저도 지하로 옮겼다가 전공노의 반발  직후 제자리에 돌려놨습니다.

 

전날 오후 5시까지 전공노 각 본부와 지부에서 보낸 근조화환의 숫자는 60개가 넘습니다. 모두 도의회 1층 로비에 설치됐죠.

 

화환들에는 ‘경기도의회는 공무원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취지의 글이 달렸습니다.

 

눈에 띄는 다른 글도 있습니다. ‘근조화환을 숨겨도 책임은 숨겨지지 않는다’는 문구입니다.

경기도의회 임시회. 경기도의회 제공

도내 직원노조 가운데 하나인 경기도청공무원노조도 26∼28일을 추모 기간으로 정하고 근조 리본을 달며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이들은 경기도의회 직원 사망과 관련해 “도의회는 이번 사태의 경위와 원인을 책임지고 명백히 밝혀야 한다”며 “수사와 감사, 업무 지시와 관리 체계 전반에서 어떤 구조적 문제와 책임 방기가 있었는지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경기도의회의 반응은 침묵입니다. “유족이 언론보도를 원치 않는다”며 보도 자제를 요청했습니다. 고인의 부고도 내부에 게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론화를 피하려는 움직임으로 여겨집니다. 

 

경기도의회 측은 “1층 로비에서 조형작품 전시회가 있었고 근조화환에 보낸 이가 없어 일단 민원인 접견실로 옮겨놓았던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도의회의 태도가 유족 입장을 고려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 항공료 등 회계부정 의혹…도의회 집행부는 책임 없다?

 

앞서 지난 20일 용인의 한 도로에서 30대 7급 공무원 A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기도의회의 한 상임위 소속이던 그는 지난해 5월부터 ‘국외 출장 항공료 부풀리기 의혹’에 따른 업무상 배임 혐의로 8개월간 경찰 수사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숨지기 하루 전에 두 번째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혐의를 부인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전공노 관계자들은 말단 직원이던 고인이 극심한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김진경 경기도의회 의장. 경기도의회 제공 

예산 집행 과정의 구조적 문제를 실무자의 책임으로 몰아세웠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전공노 경기도청지부는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책임을 추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도 안팎에선 관례처럼 여겨지던 지방의회 국외출장의 민낯과 허술한 검증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어느 개인의 잘못이 아닌, 이를 방기한 경기도의회와 도의회 집행부의 책임부터 물어야 합니다. 중대재해나 중대시민재해 처벌의 법적 책임을 관리자, 단체장에게 묻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앞서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해 2월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로부터 지방의회 출장비 관련 수사를 의뢰받았습니다. 의왕·과천·안성을 제외한 경기 남부 18곳 시·군의회와 경기도의회까지 총 19곳이 수사 대상에 올랐죠. 

 

이 중 용인·양평·이천·김포·여주의 5곳은 불입건으로 종결됐습니다. 지금까지 10곳 안팎의 도내 지방의회가 검찰에 넘겨지고 나머지 의회에 대해선 경찰 수사가 이어지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권익위가 의혹을 제기한 지방의회 출장 기간은 2022년 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3년간입니다. 지방의회들은 기록상 심사위원회(심사위)까지 열었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죠. 일부 의회는 삼사위 회의록을 공개하지도 않았습니다.

 

경기도의회의 경우 2024년 의원 156명 중 143명(92%)이 항공료 부풀리기 등 회계부정 의혹으로 입건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