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촛불에서 아미밤으로 [이지영의 K컬처 여행]

2026년 3월21일 서울 광화문광장은 거대한 보랏빛 바다로 변모한다. 방탄소년단(BTS)이 3년9개월 만에 선보이는 신보 ‘아리랑(ARIRANG)’의 첫 무대를 이곳에서 열기 때문이다. 특정 아티스트의 단독 공연을 위해 광화문광장이 문을 열어준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 파격적인 결정은 단순히 한류 스타의 화려한 귀환을 넘어 우리 현대사가 쌓아온 광장 민주주의의 가치와 K컬처가 도달한 예술적 성숙이 만나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광화문은 우리 민족의 고비마다 시대의 열망이 응축되던 주권의 상징적 장소다. 특히 이번 공연은 2024년에서 2025년으로 이어지던 겨울 광장을 가득 메웠던 응원봉 시위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시민들은 아이돌 팬덤의 전유물이었던 응원봉을 들고 나와 축제와 같은 평화로운 저항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는 팬덤이라는 유희적 공동체가 어떻게 성숙한 시민 의식과 결합하여 사회적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 결정적 장면이었다. 과거 광장을 밝혔던 촛불이 민주주의를 향한 절박한 외침이었다면, 이제 그 자리를 채울 ‘아미밤’의 불빛은 연대와 포용의 메시지로 확장된다.

 

이 역사적 공간에서 울려 퍼질 신곡 ‘아리랑’은 단순한 앨범 타이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아리랑은 개인이 소유하는 노래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짊어지고 건너온 이야기다. 그것은 특정한 작곡가 없이 이름 없는 이들이 고난 속에서 희망을 담아 부르던 노래였다. BTS가 컴백 앨범을 ‘아리랑’이라 이름 붙인 것은 단순한 향수나 트렌드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고난을 견뎌냈고 경계를 건넌 우리가 누구인지를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선언하는 것이리라.

 

여기서 더욱 의미 있는 것은 BTS가 팬들을 ‘아미랑(ARMYrang)’이라 명명했다는 점이다. 민속 전통에서 노래의 후렴구는 타인이 참여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래서 ‘아미랑’이라는 명칭은 팬을 단순한 소비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함께 부르며 완성하는 ‘공동체’로 보고 있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3월의 어느 밤 광화문을 메울 수만 개의 아미밤은 과거 광장을 지켰던 시민들의 열망과 현재 전 세계 청년들이 공유하는 연대의 의지가 만나는 지점이다. 억압에 저항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BTS의 서사는 이제 ‘아리랑’이라는 오래된 노래 안에서 노래를 함께 완성하는 공동체로 확장되려 한다. 광화문광장에서 울려 퍼질 이 노래는 민주주의의 성지에서 피어나는 연대의 합창이 될 것이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