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3년 12월2일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1817∼1825년 재임)가 연방의회에서 발표한 미국의 외교 정책 기조는 흔히 ‘먼로 독트린’(먼로주의)으로 불린다. 이는 크게 ‘유럽 대륙에 대한 미국의 불간섭’과 ‘미주 대륙에 대한 유럽의 불간섭’ 두 가지 원칙을 담고 있다. 학자들은 “미국이 유럽을 향해선 ‘고립주의’를 표명한 반면 서반구(남북 아메리카)에서는 영향력 확대, 즉 ‘팽창주의’ 실현을 공공연히 꾀한 외교 정책”이라고 평가한다. 다소 모순된 용어 같지만 ‘고립적 팽창주의’인 셈이다. 유엔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철저히 무시하면서도 최근 베네수엘라 침략에서 보듯 중남미 장악에는 엄청난 공을 들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와 똑 닮았다.
실제로 트럼프는 먼로주의 탄생 202주년을 맞은 2025년 12월2일 대(對)국민 메시지에서 “수세기 동안 공산주의, 파시즘, 외세의 침략 등으로부터 미주 대륙을 지켜왔다”고 먼로주의에 찬사를 바쳤다. 이어 “나는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서 이 오래된 정책(먼로주의)을 자랑스럽게 재확인한다”면서 이른바 ‘트럼프 코롤러리(Corollary)’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코롤러리는 영어사전에 따르면 ‘필연적 결과’ 또는 ‘당연한 귀결’을 의미한다. 따라서 트럼프 코롤러리란 먼로주의 원칙을 재확인하되 그 연장선상에서 일부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 ‘업데이트’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미 언론은 트럼프의 이름 도널드에서 ‘돈’, 먼로에서 ‘로’를 각각 따 붙인 ‘돈로(Don-Roe)주의’라고도 부른다.
요즘 국제정치에서 ‘미들 파워’(Middle Power)라는 개념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중간에 있는 나라를 뜻하는데, 종종 ‘중견국’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사실 모호한 개념이다. 부자가 아니고 그렇다고 서민도 아니면서 그 사이 경계에 끼어 있는 ‘중산층’과 비슷하겠다고 하겠다. 학자들은 미국, 중국, 러시아 같은 초강대국과는 거리가 먼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호주 등을 미들 파워로 간주하는 것 같다. 일부는 한국도 미들 파워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최근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트럼프와 미국을 겨냥한 듯 “강대국의 강압에 맞서 미들 파워 국가들이 단결해야 한다”고 촉구해 청중의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지난 1월30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전쟁기념사업회(회장 백승주) 주최로 제13회 ‘나지 포럼’이 열렸다. 나지란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다. 돈로주의 하의 새로운 국제질서 전망을 주제로 한 이번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김현욱 세종연구소장은 한·미 동맹의 미래에 관해 “미국이 첨단 제조업 육성을 위해 한국의 투자를 필요로 하는 만큼 동맹은 더욱 공고하게 유지될 것”이라며 긍정적 관측을 내놓았다. 다만 향후 미국 패권과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약해질 것이란 예상 아래 “중견국들이 연대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 또한 미들 파워 국가들 간의 단결을 주문한 셈이다. 돈로주의의 격랑을 넘어 우리 국익을 극대화할 치밀한 전략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하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