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전기수’라는 존재와 재회했다. 전기수는 조선 후기에 등장한 한문 소설이나 국문 소설을 여러 사람 앞에서 읽어주던 직업적 이야기꾼을 일컫는다. 내용을 재미있게 풀어내기 위해 오늘날 구연동화 전문가처럼 낭독에 덧붙여 표정, 동작, 목소리 조절, 감정이입 같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행위도 곁들였다.
아내와 함께 인천이 개항하던 시기의 모습을 둘러보다 ‘한국근대문학관’의 기획 전시,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2025년 6월27일∼2026년 5월31일)에서 만났다.
유교문화 속에서 사서삼경의 도덕 세계가 아닌 재미 본위의 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보여주는 자료들과 자리하고 있었다.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같이 낯익은 소설만 유통된 것이 아니고 ‘조웅전’ ‘옥루몽’ ‘화용도’ ‘강릉추월전’ ‘상사동기’ ‘득겁전’ ‘장풍운전’ ‘선조고사’ ‘옹고집전’ ‘유충렬전’과 같은 사랑, 풍자, 영웅, 역사, 애국, 질투, 복수라는 주제를 다루는 소설들이었다. 전시회는 오늘날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한국 드라마, 한국 영화의 근간이 되는 K스토리의 힘”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닌, 이미 오랜 뿌리를 가지고” 있음을 상기했다. 근래 세계의 방방곡곡에서 대한민국의 K컬처를 좋아하고 따라 하고 경험해 보려는 놀라운 현상의 근원을 더듬는 반가움이 있었다.
전기수는 커뮤니케이션의 측면에서 보면 문자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문자의 의미를 이야기 형태로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였다. 메시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시장통처럼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 소설을 맛깔나게 읽어주면서, 이야기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거나, 흥미롭거나 긴박한 순간에 이를 때 이야기를 멈추고 청중들에게서 돈을 받았다. 지식과 정보의 중개자, 엔터테이너, 정보 판매자였다.
전기수는 인쇄술의 발전으로 책의 보급이 대중화되고, 문맹률 감소로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증가하고, 정보 전달 미디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라진다. 그러나 이야기로 대중의 사랑을 받던 전기수의 역할과 진화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가 거의 없는 게 아쉽게 느껴졌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전기수 역할을 한 거리의 이야기꾼 랩소도스(‘Orality and Literacy’, Ong)를 포함한 다양한 유형의 ‘말하기’가 입(구술)을 통해 교양과 지식의 습득을 돕고 민주주의를 작동케 한 시스템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전기수의 스토리텔링과는 다르게 오물 같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유튜버가 횡행하는 시대라서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