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도심 마라톤의 두 얼굴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마라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이듬해 4월19일 미국 보스턴에서 최초의 연례 도시 마라톤이 열렸다. 수만명이 도심 도로를 가득 메우는 대규모 시민 참여형 마라톤은 1970년 센트럴 파크에서 열린 뉴욕 마라톤이 효시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1982년 서울국제마라톤이 첫 국제대회 수준의 도심 마라톤으로 기록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달리기 인구 1000만명 시대에 접어들 정도로 달리기가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으며, 마라톤 대회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마라톤은 이제 단순한 운동을 넘어 하나의 ‘건강 신앙’이 됐다. 마라톤 정보 사이트 ‘마라톤 온라인’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는 530개. 서울만 해도 한여름을 제외하고 주말이면 하루 보통 3, 4개 대회가 열렸다. 11월9일에는 무려 7개의 대회가 동시에 개최됐다.



도심 마라톤은 양날의 검이다. 뉴욕, 런던, 보스턴 등은 마라톤을 통해 도시의 역동성을 홍보하고 막대한 경제 효과를 거둔다. 빌딩 숲 사이를 달리는 쾌감은 마라톤을 ‘도시형 스포츠’로 정착시켰다. 그러나 우리처럼 특정 구역에 대회가 몰리는 경우에는 시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서울에서는 주말이면 주요 간선도로가 거대한 ‘러닝 트랙’으로 변하자, “자기 건강 챙기자고 남의 시간 뺏느냐”는 고성이 터져 나오는 게 일상이 됐다. 마라톤으로 인한 교통 혼잡 관련 민원도 매년 급격한 증가세를 보인다. 잦은 교통 통제와 대중교통 우회 운행 등으로 불편이 크다며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서울시가 최근 ‘마라톤 가이드라인’이라는 메스를 꺼내 들어야 할 정도로 시민 불만은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지침에 따르면, 혼잡 구역의 참가 인원을 제한하고 출발 시각도 이른 새벽으로 앞당겼다. 심지어 축제 분위기를 돋우던 술 후원까지 금지하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건강한 도시’라는 명분과 ‘이동의 자유’라는 기본권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으려는 고육책이다. 달리는 이의 벅찬 호흡도 소중하지만, 멈춰 선 차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이들의 일상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