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직 대법원장의 재판 독립 침해 유죄, 사법부는 성찰해야

박근혜 정부 당시 ‘사법농단’ 혐의 등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최근 항소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법원행정처장 시절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박병대 전 대법관에게도 같은 형량의 유죄가 선고됐다. 전직 대법원장이 형사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것은 사상 처음이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지만 사법부 역사에 남을 중대한 오점이 아닐 수 없다.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장 재임 시절 재판 개입과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등 47개 혐의로 2019년 2월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직권이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이 성립할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모든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 결과는 달랐다. 항소심은 2015년 서울남부지법의 ‘한정 위헌’ 취지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에 개입한 혐의와, 2015년 옛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이 낸 지위확인소송의 1심 결과를 뒤집도록 서울고법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 등 2건을 유죄로 판단했다. 1심 무죄 판결은 직권남용의 법리를 협소하게 해석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양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특정 법관들의 성향과 활동 등을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지만, 사법 신뢰를 훼손한 대표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 등을 향해 “피고인들이 개인적인 이익이 아니라 사법부 위상을 제고하려는 과정에서 범행에 이르렀다고 해도 재판의 독립이 훼손되고 공정한 재판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초래됐다는 점에 변함이 없다”고 무겁게 질책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가 생명이다. 정치권력의 사법 독립 흔들기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사법부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 전직 대법원장의 유죄 판결을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