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용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넓히는 형법 98조(간첩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가 1월에도 무산됐다. 지난해 1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는데도 본회의 상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첨단산업 기술 유출을 막고 경제안보를 지켜야 할 필요성이 커지는 상황 속 간첩법 개정안은 여야 간 이견이 없는 비쟁점 법안이다. 그러나 같은 형법 개정안이라는 이유로 쟁점 법안인 법왜곡죄와 하나의 법안으로 묶여 법 개정이 어렵게 됐다.
간첩법 개정안이 법왜곡죄와 묶인 것은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하면서였다. 법사위 1소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당시 회의에서 법안 심의 결과를 보고하면서 두 법안을 하나의 형법 개정안 대안으로 묶어 처리해 달라고 했다. 이후 두 법안은 김 의원의 말대로 처리됐다.
이때부터 간첩법 개정안의 처리 지연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민주당은 이 법안 처리를 명시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간첩법 개정을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법왜곡죄는 국민의힘이 ‘악법’으로 규정하며 반대하고 있다. 법왜곡죄는 판·검사가 사건을 조작해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거나, 물어야 할 죄를 경감시키는 경우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법권을 침해하는 위헌 요소가 담겨 있다.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은 여당의 법왜곡죄 추진을 “정말 부끄러운 문명국의 수치”라고 했다.
이를 두고 여권 고위직 인사는 “내가 볼 때는 (간첩법 개정)하기 싫어서 두 법안을 묶은 것이다. 간첩법 개정안과 법왜곡죄를 따로 처리해도 된다. 합칠 필요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두 법안이 분리돼 있었다면 시차를 두고 간첩법 개정안이 처리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여야 합의로 의원 30명의 동의를 얻어 본회의에서 법왜곡죄 부분만 수정·삭제하는 식으로 간첩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간첩법 개정안의 2월 처리마저 무산될 경우 정치권이 6·3 지방선거 준비에 돌입하기 때문에 처리 시점은 기약 없이 미뤄질 수도 있다.
한편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2월 임시국회에 대해 “본회의에 85개 민생법안이 있고 이번 주 법사위에서 처리하면 또 올라오는 법안이 있다”며 “설 명절 전에 국회에 계류된 (민생)법안이 하나도 없게 처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미국 관세 문제와 맞물린 대미투자특별법을 2월 임시국회 회기 중인 2월 말∼3월 초쯤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