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케빈 워시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를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지명하자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원자재 시장에서 은 선물 가격은 장중 30% 넘게 폭락해 46년래 최대 낙폭을 기록하고, 금 선물 가격도 10% 넘게 빠졌다. 당초 예상보다 ‘덜 비둘기파’(금리인하 선호) 인물이 지명된 데다 인공지능(AI) 투자 축소 우려·차익 실현이 겹치며 시장 충격이 컸다.
◆치솟던 금·은의 ‘폭락’
2일 외신 등에 따르면 워시 후보가 연준 의장에 취임할 경우, 단기적으로 연준이 기준금리를 낮출 가능성이 크지만 추가 인하 폭은 제한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워시 후보는 최근 몇 달 사이 금리 인하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입장을 같이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시가 인준되면 금리 인하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느냐’는 질의에 “아니다”라면서도 “그는 분명히 금리 인하를 원한다. 나는 그를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고 말했다.
워시 후보가 과거 통화 긴축을 선호하는 매파 성향으로 평가된 점은 변수다. 그는 연준 이사이던 2010년 11월 연준이 2차 양적완화(QE)를 결정할 당시 이사 중 유일하게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
예상보다 ‘덜 비둘기파’ 후보가 차기 의장에 지명되자 원자재 가격이 폭락했다. 상대적으로 금리 인하 폭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에 달러 강세가 점쳐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 플랫폼인 인베스팅닷컴 집계 결과 이날 은 현물은 장중 30% 넘게 폭락했다가 낙폭을 줄여 전일(116.14달러)보다 27.0% 급락한 84.70달러에 마감했다. 이는 1980년 3월 ‘실버 목요일’ 이후 46년래 최악의 낙폭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예상에 못 미치는 실적도 AI 인프라 투자 우려로 이어지며 은값 하락의 기폭제가 됐다.
금값도 폭락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금 선물 종가가 온스당 4745.10달러로 전장보다 11.4% 하락했다. 이날 금 현물 종가도 4865.35달러로 전장보다 9.8% 내리며 5000선을 내줬다. 금 현물은 지난달 26일 5000달러 선을 돌파한 이후 전날 장중 5595.46달러까지 치솟았으나 하루 만에 주저앉았다. 금·은 폭락 여파로 백금(-19.18%), 팔라듐(-15.7%) 등 다른 귀금속 가격도 미끄러져 내렸다.
달러 가치는 소폭 올랐다. ICE선물거래소에서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반영한 달러 인덱스는 96.99로 전장보다 0.71포인트 상승했다.
워시 후보 지명으로 당분간 금융 시장 불안은 이어질 전망이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은 미 연준이 올해 6월부터 연내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했다. 워시 후보가 미 행정부의 금리 인하 요구에 보다 수용적인 입장을 보이겠지만 △큰 폭의 금리 인하를 뒷받침하지 않는 경제 여건 △다른 FOMC 위원들과의 합의 난항 △국가신용등급 영향 우려 등 제약요인으로 인해 급격한 금리 인하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에 대한 미 상원 인준 절차도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연준 의장 인준은 상원 은행위와 상원 전체회의 표결을 통과해야 한다. 은행위 전체 24명 중 공화당 13명, 민주당 11명 구도인데,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 일부 의원도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에 대한 법무부 수사를 문제 삼아 워시 지명에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워시 후보는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임원 등을 지냈으며 2006년 당시 역대 최연소 이사(2006∼2011년)로 연준에 합류했다. 2019년 10월 쿠팡의 미국 모회사인 쿠팡 Inc 이사회 사외이사에 참여했다. 지난해 6월 기준 쿠팡 주식 47만주, 지난달 29일 종가 기준 약 940만달러(약 130억원)를 보유하고 있다. 의장직에 오르기 전 이사직은 사임하고, 보유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
◆코인도 날개없는 추락
국내 주식시장으로의 머니 무브(자금 대이동)가 본격화하면서 가상자산이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전 세계적인 가상자산 약세까지 겹치며 국내 가상자산 거래대금은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2일 가상자산 시황플랫폼 코인게코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후 5시 기준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빗썸·코빗·코인원·고팍스)의 24시간 거래대금은 5조원 남짓으로, 당일 코스피 시장(약 35조원)과 코스닥 시장(약 23조원)의 8.9%에 그쳤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한때 코스피·코스닥 시장 거래대금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자금을 끌어들였다. 2024년 12월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의 월간 거래대금은 약 541조원에 달해, 코스피 시장(약 175조원)과 코스닥시장(약 125조원) 합산액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그러나 가상자산 거래가 점차 한산해지고 국내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타면서 지난해 2월부터 두 시장 간 전세가 역전됐다.
올해 들어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코인 엑소더스(대탈출)’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업비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바이낸스 등에 이어 세계 3∼4위 수준의 거래 규모를 자랑했으나, 전날 오후 8시 기준 24시간 거래량은 18억6094만달러(약 2조7000억원)로 26위까지 떨어졌다. 빗썸은 46위, 코빗은 80위로 밀려났고 코인원·고팍스는 100위권 밖이다.
이 여파로 네이버와 합병한 두나무의 미국 나스닥 상장 일정에 변화가 생길지도 주목된다. ‘세계 4위 가상자산 거래소’와 국내 1위 핀테크 기업의 결합이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불과 한두 달 사이에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세로 돌아서면서 투자자 이탈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이날 미국 동부시간 오전 1시 기준 비트코인 1개 가격은 7만8566달러(약 1억1400만원)에 거래 중이다. 비트코인은 전날 약 9개월 만에 8만달러 아래로 떨어진 뒤 하락폭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