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104동 물건 빠졌나요? 아, 어제 나갔다고요?”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제가 머문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비슷한 내용의 전화만 네 통이 걸려 왔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김 모 대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군요. 그는 “전세 만기는 다가오는데 물건은 없고, 마음 급한 세입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급매 없냐’고 채근한다”며 “혹시라도 가격 조금 낮춘 물건이 뜨면 우리가 문자 돌리기도 전에 알림 설정을 해둔 손님들이 먼저 연락해온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5월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라는 ‘데드라인’이 다가오고 있지만, 시장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매물이 쏟아질 것이란 기대와 달리, 시장은 그야말로 숨 막히는 ‘매물 잠김’과 ‘눈치 싸움’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사겠다는 사람은 줄 섰는데”…매수 우위로 돌아선 시장
현장에서 체감하는 온도는 통계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월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103.7을 기록했다. 이 지수가 100을 넘었다는 건 시장에 집을 팔려는 사람보다 살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다. 오는 5월 9일로 못 박힌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시점을 앞두고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던질 것이라던 일각의 예측이 빗나간 셈이다.
오히려 가격은 더 단단해졌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48주 연속 상승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주간 매매가격지수는 105.1(19일 기준)로, 전주 대비 0.38%나 오르며 상승 폭을 유지 중이다. ‘떨어지면 사겠다’고 기다리던 대기 수요자들이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는 숫자다.
◆전세가 씨 말랐다…‘마용성’으로 몰리는 실수요
이러한 ‘매수 포모(FOMO·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현상의 기저에는 심각한 전세난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년 전과 비교해 무려 28.4%나 급감해 2만2294가구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전세를 구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이럴 바엔 차라리 사자”며 매매 시장으로 떠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마용성(마포·용산·성동)’과 동작구 일대의 열기는 뜨겁다. 강남 진입이 부담스러운 고소득 실수요자들이 이들 지역으로 몰리면서 평단가는 강남권을 위협하고 있다.
1월 실거래가 분석 결과 마포구(평당 7780만원)와 용산구(7770만원)는 어깨를 나란히 했다. 성동구 역시 평당 6720만원을 기록했다. 동작구의 경우 대출 규제 풍선효과와 정비사업 호재가 겹치며 1월 첫째 주 서울 내 상승률 1위(0.37%)를 찍기도 했다.
◆“망설이면 끝”…급매물은 ‘1일 천하’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서는 ‘초치기’ 계약이 성행 중이다. 매도자가 호가를 조금만 낮춰도 그 매물은 시장에 머무를 시간이 없다.
동작구 흑석동의 B 공인중개사는 “어제 오전 10시에 5000만원 정도 낮춘 급매물을 올렸는데, 점심시간에 가계약금이 들어왔다”며 “집을 보지도 않고 일단 계좌부터 달라는 손님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잔금 일정이나 입주 날짜는 나중 문제고, 일단 싼 매물을 선점하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덧붙였다.
매수자들의 기대만큼 ‘착한 매물’은 흔치 않다.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4%대 초반(기준금리 2.50%)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다주택자들 역시 “굳이 헐값에 팔 이유가 없다”며 버티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양도세 중과 배제 혜택이 사라지더라도, 이미 시장 가격에 세금 이슈가 선반영되었다고 판단한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증여로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5월까지 ‘강대강’ 대치…무리한 추격 매수는 금물
전문가들은 5월까지 매도자와 매수자 간의 치열한 줄다리기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매물 폭탄’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거래가 활발하게 터지기도 어려운 ‘거래 절벽 속 강보합’ 장세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한강벨트 지역의 매물 감소율이 이미 60%를 넘긴 상황에서, 5월 전까지 나올 급매물은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며 “남들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건 맞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무리하게 추격 매수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현재 대출 규제가 깐깐한 만큼, 자금 조달 계획을 보수적으로 세우고 본인이 감당 가능한 가격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정해두는 것이 ‘승자의 저주’를 피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