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을 떠난 고액 자산가가 전년 대비 두 배로 급증하며 세계 4위를 기록했다. 한때 초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상속세가 이제는 중산층까지 압박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이것이 자본의 해외 유출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상속세수 전망 및 납부 방식 개선 연구’ 보고서를 통해 현행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다.
영국 이민 컨설팅 업체 헨리앤파트너스의 조사에 따르면 2024년 1200명 수준이었던 한국의 고액 자산가 순유출 인원은 2025년 2400명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이는 영국 중국 인도에 이어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수치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주로 미국과 캐나다였다.
자산가들이 짐을 싸는 주된 원인으로는 최고 50~60%에 달하는 높은 상속세율이 꼽힌다. 대한상의는 “과도한 상속세 부담이 자본의 해외 이탈을 가속화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970년부터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GDP 대비 상속세 비중이 높을수록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상속세는 더 이상 소수만의 고민이 아니다. 2002년 1661명에 불과했던 과세 인원은 2024년 21193명으로 약 13배 폭증했다. 전체 세수에서 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0.29%에서 2.14%로 7배 넘게 올랐다.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과거의 기준이 현재의 자산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면서 중산층까지 상속세 사정권에 들어온 것이다. 상의는 현재 제도가 유지될 경우 2024년 9조 6000억원인 상속세수가 2072년에는 35조 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상의는 당장 세율을 낮추는 것이 어렵다면 납부 방식이라도 유연하게 바꿔 기업 승계와 자산 유지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대기업과 개인에게 적용되는 10년 분납(연부연납) 기간을 20년으로 늘리고 최소 5년의 거치 기간을 도입하자는 내용이다.
또한 비상장주식에만 한정된 현물 납부(물납)를 상장주식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상장주식을 상속받았을 때 당장 낼 현금이 없어 주식을 급하게 매각하면 경영권이 흔들리거나 주가 하락으로 일반 주주들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식 가치 평가 기간 역시 현재 ‘전후 2개월’에서 ‘2~3년’으로 늘려 일시적인 주가 급등에 따른 세금 폭탄을 방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상의 강석구 조사본부장은 “높은 상속세 부담으로 기업 투자가 위축되고 경영권을 매각하는 등의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며 “기업투자 확대와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상속 납부 방식의 유연화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징벌적 성격이 짙은 현재의 상속세가 자산가의 이탈을 넘어 국가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