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공개념을 처음 구상한 19세기 미국 경제사상가 헨리 조지는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지주(地主)를 가리켜 “잠자는 동안에도 부유해지는 계급”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는 “기존 모든 세제를 없애고 ‘지대’를 세금으로 징수하는 ‘토지가치세’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세금으로 거둬들여 공공의 몫으로 삼으면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시장의 역동성을 이해하지 못한 이상주의적 실험으로 역사 속에 박제됐다.
토지공개념이 우리나라에 상륙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다. 집값이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하자 노태우정부는 1989년 12월 국회에서 택지소유상한법,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법 등 ‘토지공개념 3법’을 통과시킨다. 그러나 토지공개념은 1994년 토지초과이득세법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았고, 택지소유상한법이 1998년 헌재 위헌판정을 받으면서 동력을 상실했다. 그 후 노무현, 문재인정부에서도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중도층의 반대로 흐지부지됐다.
헌법 23조는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한다.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이 조항을 들어 토지공개념 도입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법률가는 토지공개념이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는 헌법상의 사유재산권 보장 원칙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입장이다. 국가가 전지전능한 지주로 군림할 때 시장의 창의성과 투자 활력은 질식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도 편다.
최근 조국혁신당이 ‘신(新)토지공개념’을 강령에 못 박으며 토지소유상한제와 이익환수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반론이 터져 나오며 양당 간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불과 몇 년 전 한목소리로 토지공개념 개헌을 외치던 이들이, 이제는 서로를 향해 “시대착오적”이라며 손가락질하는 풍경이 실소를 자아낸다. 자신들의 정체성조차 합의하지 못한 채 추진되는 ‘묻지마 합당’이 순항할 리 만무하다. 합당이 성사된다 해도 그 후 치열한 노선투쟁이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