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도 ‘엡스타인 후폭풍’… 클린턴 부부는 美하원 증언대 선다

왕실·정관계 줄줄이 연루

소환 요청 거부했던 클린턴 부부
“관계 끊어” 주장에도 공화 맹공
‘의회 모독’ 피소 위기에 입장 선회

노르웨이 왕세자빈도 문건 등장
“후회” 진화 나섰지만 논란 가열
英 앤드루 前 왕자 전처도 연루설
친분 부인 트럼프는 “소송” 경고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문건 공개의 파장이 끝없이 확산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의회에 출석해 엡스타인과의 관계를 증언하게 됐다.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도 왕실과 정관계 고위층까지 연루 의혹이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 법무부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추가 공개한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문건. 성범죄자 등록문서(왼쪽)와 연방수사국(FBI)이 정리한 피해자 네트워크 관련 문건 등 다수 자료가 공개된 가운데 미국과 유럽, 아시아 유력 인사들이 언급돼 있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AP연합뉴스

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ABC방송 등에 따르면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부부의 변호인단은 연방하원 감독위원회 위원장 제임스 코머 공화당 의원에게 서한을 보내 “엡스타인 의혹에 대해 증언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헌정사상 전직 대통령의 의회 출석은 극히 이례적이다. 1983년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이 헌법 200주년 기념사업 설명차 출석한 게 유일한 사례다.

당초 청문회 출석 요청을 거부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입장을 바꾼 것은 의회 모독 혐의로 고발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원 감독위원회가 ‘엡스타인 성착취망 연결고리 규명’을 위해 이들을 소환하자 클린턴 전 대통령 측은 “정치적 공격”이라며 거부했다. 위원회는 이들을 의회 모독 혐의로 고발하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지난달 21일 가결했는데, 특히 해당 결의안에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도 찬성해 압박이 초당적으로 확대됐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 AFP연합뉴스

클린턴 전 대통령은 퇴임 후인 2002∼2003년 엡스타인 전용기를 네 차례 이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엡스타인의 성 착취 피해 여성 중 한 명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안마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공개됐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엡스타인과 20년 전 관계를 끊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공화당은 끈질기게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노르웨이 호콘 왕세자의 아내 메테마리트 왕세자빈. AFP연합뉴스

문건의 충격은 유럽 왕실도 강타했다. 현재 논란의 한가운데 선 인물은 노르웨이 호콘 왕세자의 아내 메테마리트 왕세자빈이다. 미 법무부가 지난달 30일 추가로 공개한 엡스타인 파일에는 메테마리트 왕세자빈의 이름이 1000번 이상 등장했다. 왕위 계승 1순위 왕세자의 부인이 성범죄자와 부적절한 친분이 있었던 것이 밝혀지자 현지 언론과 정치권은 “메테마리트가 왕비가 될 수 있겠냐”고 직격했다. 메테마리트 왕세자빈은 즉각 “판단력이 부족했다. 엡스타인과 접촉한 것을 깊이 후회한다”고 밝혔으나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벨기에에서도 필리프 국왕의 남동생 로랑 왕자가 엡스타인과 만난 적이 있다고 시인하면서 잡음이 일고 있다. 그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엡스타인과 일대일로 두 차례 만났다면서도 “공개적으로나 단체로 만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앤드루 전 영국 왕자.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왕실은 이미 앤드루 전 왕자가 지난해 10월 지위를 박탈당한 데 이어, 전처 세라 퍼거슨과 딸 비어트리스·유지니 공주(왕위 계승 서열 9·12위)가 엡스타인과 점심을 먹은 정황이 드러났다. 퍼거슨은 엡스타인을 ‘오빠’라고 부르며 수천만원에 달하는 금전 지원을 요청한 의혹도 받고 있다.

유럽 정치인 및 고위 당국자들도 직간접적으로 엡스타인과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사퇴로 이어지고 있다. 미로슬라우 라이차크 슬로바키아 국가안보 고문은 2018년 “소녀들이 놀랍다”는 문자 메시지를 엡스타인과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날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9월 해임된 피터 맨덜슨 전 주미 영국대사는 산업장관 시절이던 2009년 고든 브라운 정부 경제 정책이 적힌 내부 메모를 사전에 엡스타인에게 전달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전날 그는 엡스타인으로부터 7만5000달러(약 1억원)를 받았다는 의혹이 일자 집권 여당인 노동당을 탈당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UPI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서 엡스타인과의 친분을 재차 부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엡스타인과 친분이 없을 뿐 아니라, 법무부에 의해 방금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엡스타인과 마이클 울프라는 부도덕한 거짓말쟁이 작가가 나를 훼손하기 위해 공모했다”고 주장했다. 언론인 출신인 울프는 대표적인 반트럼프 인사로 트럼프와 엡스타인의 친분이 깊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급진 좌파들의 헛된 희망은 여기까지”라며 “그들 중 몇몇에게 소송을 걸겠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