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 요청한 관계의 완성
‘독생녀’는 하나님의 딸이라는 섭리적·관계적 의미를 담은 표현으로, 독생자와의 관계 속에서 요청되는 상대적 개념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성서에서 직접 나온 표현도, 전통 기독교 신학의 보편 개념도 아니다. 통일교 신학 내부에서 형성된 참부모 신학의 전개 과정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용어이다. 통일교 신학은 구원을 타락으로 무너진 인간의 관계·가정·혈통 질서의 회복으로 이해하며, 이 구원 구조의 핵심을 ‘참부모’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왔다. 참부모 신학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구원의 주체로 서야 한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즉, 독생녀란 구원사의 여성 주체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개념은 오랫동안 독생자·재림메시아 중심의 신앙 틀 속에서 충분히 언어화되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다.
문선명 총재 재세시에도 여성의 섭리적 중요성과 어머니의 역할은 반복적으로 강조되었으나, ‘독생녀’라는 명칭이 정식 신학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다. 이 용어는 문 총재 사후, 참부모 신학이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고 이해되는 국면에서 한학자 총재가 자신의 사명과 위치를 설명하는 과정 속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독생녀는 새로운 계시라기보다 통일교 신학과 참부모 신학이 축적해 온 문제의식, 예컨대 구원은 단독 주체가 아니라 관계적 구조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특정 역사적 시점에서 언어화된 해석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직하다.
이 때문에 독생녀라는 용어는 많은 이들에게 낯설고, 때로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독생녀라는 개념을 단지 하나의 새로운 교리 선언이나 권위 주장으로만 이해한다면, 그 출현 배경을 놓치게 된다. 독생녀는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다. 이는 기독교 구원사가 지닌 구조적 긴장이 일정 지점에 이르렀을 때, 하나의 사유적 응답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결과다. 기독교 구원사는 독생자로 시작되었다. 초림은 구원의 문을 열었으나, 그 문 너머에서 인류 전체의 관계 질서를 실체적으로 세우는 단계는 여전히 역사 안에 열려 있었다. 재림이 반복이 아니라 완성의 방식이어야 한다면, 그 완성은 더 이상 단독적 주체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독생녀 개념은 질문으로부터 형성된다. 독생녀는 21세기 세계화된 종교 지형 속에서 여성 지도성이 전면화되는 흐름을 응축적으로 표현한 개념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성서의 구원 서사는 처음부터 철저히 관계적이다. 창세기의 창조는 남자 혼자서 완결되지 않는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 2:18)라는 선언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 관계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타락 역시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관계 질서의 붕괴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구원의 완성 역시 개인의 회복을 넘어 관계의 재창조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 구원사에서 이 관계의 축은 오랫동안 상징적 개념에 머물러 있었다. 예수는 신랑으로 등장하지만, 신부는 역사 속에서 비유와 공동체의 이미지로 제시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불렸지만, 이는 집합적 은유일 뿐, 인류 구원사가 관계 질서로 실체화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긴장이 남는다. 이 공백은 구원사가 다음 단계를 요청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흔적으로 읽을 수 있다. 독생녀 개념은 바로 이 공백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만일 구원이 창조 질서의 회복이라면, 그 회복은 남성과 여성, 주체와 주체가 상보적으로 결합하는 구조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구원사가 더 이상 단독 주체 중심의 단선적 서사로 머물 수 없다는 자각, 그리고 인류 재창조가 생명과 계승의 질서를 포함해야 한다는 인식이 독생녀 개념을 불러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독생녀가 ‘여성 메시아’나 ‘새로운 구세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독생녀는 독생자를 대체하거나 배제하기 위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생자가 열어 놓은 구원사의 방향을 관계적·창조적 차원에서 완성으로 나아가게 하는 대응 개념이다. 독생자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고 관계 회복의 길을 열었다면, 독생녀는 그 열린 구원사가 인류 전체의 삶 속에서 실체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조건으로 요청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 개념이 단지 추상적 사유로만 머물 수 없다는 인식이다. 구원사가 삶의 질서라면, 그것은 역사와 인격 속에서 검증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독생녀 개념은 실제 역사와 인격의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둔다. 구원은 구체적 삶이어야 하며, 사상은 인격을 통해 시험받는다는 요청이 여기에 담겨 있다.
따라서 독생녀 개념은 기독교 구원사가 스스로 품고 있던 ‘구원은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사유적 응답이다. 독생자가 시작한 구원사가 개인의 영혼 구원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인류 공동체의 재창조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갈림길에서 독생녀 개념은 후자를 향한 사유의 문을 연다. 이 개념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독생녀는 기존 신앙 언어로는 충분히 설명되기 어렵다. 그러나 설명이 어렵다는 것이 곧 오류를 뜻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