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계 중환자실 환자의 치료 기간은 유난히 길어질 때가 많다. 환자의 전신 상태, 뇌손상 회복 가능성 등에 따라 의학적 판단에 따른 치료 방법과 적극성은 달라질 수 있다.
의학적 소견이 아님에도, 환자의 나이는 종종 변수가 된다.
젊은 환자를 마주할 때면 의료진의 머릿속에 ‘치료 중단’이라는 선택지는 좀처럼 끼어들 틈이 없다. 환자 의식은 돌아오지 않고, 경련은 조절되지 않고, 각종 영상 자료와 수치들이 나쁜 예후를 예고하고 있어도, 의료진은 다음 단계의 치료만 생각하게 된다. 아직 젊다는 사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많다는 그 하나만으로, 의료진과 가족은 결코 쉽게 멈춰 서지 못한다.
얼마 전 한 환자가 심정지 후 저산소 뇌손상으로 타 병원에 입원했다. 심정지 당시 심폐소생술을 거의 1시간 했고, 뇌손상이 심했다. 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보호자들(부모)도 이미 환자의 상태를 자세히 들었지만 ‘재평가’를 원한다며 서울대병원으로 왔다. 결과는 이전과 같았다. 뇌사에 준하는 상태. 보호자들은 아들의 상태를 이미 인지했지만, 치료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나이 이제 겨우 25세, 꽃다운 대학생이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치료는 지속됐다. 그리고 거의 6개월이 지난 시점이 돼서야 보호자들은 “앞으로도 상태가 비슷하다면 장기기증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청년이 뇌염, 뇌전증중첩증, 뇌졸중 등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면 대부분의 부모가 비슷할 것이다.
의료진이 젊은 환자에 인공호흡기, 저체온 치료, 수술적 치료, 승압제, 고용량의 마취제를 이용한 치료를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치료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기약 없는 장기전의 시작이다. 이 현장을 지키는 주 보호자는 대부분 부모다. 자녀의 숨결이 기계에 의존해 겨우 이어지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부모에게 연명치료 중단은 선택지에 보통 없으며,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하게 된다. 의사의 설명이 아무리 논리적이고 정확하더라도, 부모들은 그것이 자녀를 포기하라는 냉혹한 선택의 기로에 선 것처럼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학적 판단은 치료 중단을 결정하는 근거로서 오히려 ‘빈약’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기적’의 무게가 더 크다.
의료진은 손상된 뇌세포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얼마나 낮은지, 현대 의학의 한계가 어디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족이 그 결론을 받아들이는 데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의학적으로는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환자의 곁을 지키며 가족들에게 설명을 반복하고 치료를 이어가게 된다. 가족이 스스로 마음의 정리를 하고 현실과 마주할 시간을 벌어주고자 하는 마음이다.
젊은 환자와 고령 환자에게 적용되는 의학적 치료 원칙은 동일하다. 하지만 그 끝에서 마주하는 감정의 무게는 결코 같을 수 없다. 고령 환자의 죽음이 한 생애를 매듭짓는 ‘마무리’로 받아들여질 때, 젊은 환자의 죽음은 채 쓰지 못한 ‘중단된 이야기’로 남는다. 그 미완의 서사 앞에서 모든 이가 무력감을 느끼고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젊은 환자의 중환자실은 삶과 죽음이 가장 치열하게 충돌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존엄한 죽음보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가족과 의료진의 소망을 더 자주 목격한다. 의사들이 의식이 없는 환자를 검진하며 손을 잡고 “오늘은 눈이라도 떠봅시다”라는 말을 여러 번 읊조리기도 한다. 그렇게 오늘도 신경계 중환자실은 24시간 치열하게 돌아간다. 누군가의 중단된 이야기가 기적처럼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김태정 서울대병원 신경과·중환자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