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엄마들 사이에서 “경은정 선생님께 보내면 글쓰기 실력이 쑥쑥 늘어난다”는 평을 듣던 소위 ‘잘 나가는’ 논술강사였다. 하지만 정작 큰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을 때, 나는 무력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던 강사로서 자부심은 내 아이와의 벽 앞에서 오히려 자괴감이 되었다.
아이에게 더 나은 환경을 열어주고자 긴 고민 끝에 상경을 결정했지만, 서울에서 마주한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또한 나로서는 커리어를 포기해야 하는 변화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서울시 ‘서울런 시니어 멘토’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강사도 엄마도 아닌 ‘멘토’로서 남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서 생각지 못했던 다른 세계가 열렸다.
경은정 서울런 시니어멘토
멘토링을 통해 만난 아이들은 내 아이의 거울 같았다. 학교 밖 청소년, 학습 의욕을 잃은 중학생을 만나면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화려한 강의 스킬이 아니라 “기분은 어때?”, “그 노래 가사 참 좋더라” 하며 눈을 맞추고 들어주는 ‘어른 친구’였다.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그제야 공부할 용기를 냈다.
공부는 세상과 나를 잇는 통로가 되어 주지만, 그 속도를 놓친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끊어져 나가는 단절의 경험이 된다. “선생님 덕분에 다시 시작해 보고 싶어요”라는 멘티의 고백을 들으며, 나는 교육의 본질이 ‘지식 주입’이 아닌 ‘관계 맺기’에 있음을 배웠다.
놀라운 변화는 집 안에서도 일어났다. 내가 밖에서 남의 아이들을 품는 동안 내 아이도 ‘서울런’을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있던 것이다. 엄마의 말에는 귀를 닫던 아이가 서울런에서 만난 대학생 멘토 형에게는 마음을 열었다. 엄마 모르게 서울런 멘토링을 시작했던 아이는 어느 날 “멘토 형은 엄격한데, 진짜 친형처럼 내 고민을 들어줘”라고 얘기하며 웃었다. 부모와 학교가 채워 주지 못한 틈을 다른 어른이 메워 주고 있었다. 우리 모자는 그렇게 각자의 멘토링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통계에 따르면 소득 수준에 따른 사교육비 지출 격차는 3.3배에 달한다. 부모의 경제력이 학력 격차로 직결되는 현실에서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학교 밖 아이들은 너무 쉽게 기회로부터 멀어진다. 서울런은 이 무너진 사다리를 복원하기 위한 서울시 대표 교육복지 사업이다.
학부모이자 멘토로서 경험한 서울런은 교육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홀로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는 ‘양질의 콘텐츠’만큼이나, 옆에서 보폭을 맞춰 줄 ‘정서적 지지’가 절실하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일각에선 공공의 영역에서 굳이 민간의 유명 강의를 지원하느냐 묻는다. 하지만 학교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온 내 아이, 그리고 환경적인 이유로 출발선이 뒤처진 수많은 아이에게 서울런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튼튼하고 확실한 사다리가 필요하고, 서울런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런은 내 삶에 작은 기적을 가져왔다. 아들이 소속감을 되찾고, 멘티들이 학습에 성과를 내는 모습도 봤다. 도움받던 멘티가 대학생 멘토로 돌아오고, 나 같은 학부모가 시니어 멘토로 활동하는 ‘배움의 선순환’도 목격할 수 있었다. 내가 돕는 멘티들이 훗날 동료 멘토가 되어 다시 누군가의 사다리를 잡아주는 그날을 꿈꾸며,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희망의 사다리를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