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1년 11월 당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을 방문했다. 오브라도르는 “내가 존경하는 미국 대통령이 두 명 있다”며 에이브러햄 링컨(1861∼1865년 재임)과 프랭클린 루스벨트(1933∼1945년 재임)를 꼽았다. 링컨은 1860년대 프랑스 제국 나폴레옹 3세 황제가 멕시코를 집어 삼키려고 하자 “프랑스와 전쟁도 불사할 것”이라며 맞서 결국 프랑스군 철군을 이끌어냈다. 1930년대 멕시코 정부의 석유 산업 국유화 단행에 유럽 열강은 일제히 멕시코를 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1941년 멕시코와 협약을 체결하고 자국산 석유에 대한 멕시코의 권리를 순순히 인정했다.
오늘날 미국 서부와 남부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콜로라도,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의 주(州)는 1840년대 초만 해도 모두 멕시코 영토였다. 당시 미국·멕시코 간 국경선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매우 혼란한 상태였다. 그 틈을 타 많은 미국인이 경계를 넘어 멕시코 땅에 들어가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마을을 형성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멕시코가 군대를 동원하고 미국 또한 물러서지 않으며 마침내 1846년 4월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미군이 연전연승을 거둔 끝에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마저 미군 수중에 떨어졌다. 결국 멕시코는 1848년 2월 국토의 무려 55%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미국에 양도하는 것으로 전쟁을 끝맺었다.
20세기 들어, 특히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 이후로 미국·멕시코 양국은 지난날의 악연을 잊고 대체로 사이좋게 지냈다. 물론 미국이 ‘멕시코·미국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을 멕시코는 ‘멕시코에 대한 미국의 무력 간섭’으로 규정하는 등 과거사를 바라보는 두 나라의 관점에는 어쩔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이 멕시코를 대하는 태도는 너무나 거칠고 또 무례하다. 트럼프는 취임한 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멕시코만’(Gulf of Mexico)이란 지명을 ‘미국만’(Gulf of America)으로 고쳤다. 멕시코 국내에 미군을 투입해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멕시코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일은 멕시코·미국 전쟁을 종식시킨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 체결 17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트럼프는 대국민 메시지에서 “미국의 남서부 영토를 확보하게 만든 전설적 승전”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미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용감한 사람들을 기린다”며 멕시코 측 희생자에 관해선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튿날인 3일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논평을 요청하는 기자들에게 “우리는 항상 주권을 수호해야 한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링컨, 루스벨트 같은 위대한 지도자의 시대는 진작 끝났고 트럼프의 미국에는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멕시코에게 미국은 너무 부담스러운 이웃 나라인 듯하다.